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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6.17 기다림의 미덕을 가르쳐 준 김결 (1)
  2. 2010.06.11 6학년 울 딸, 알고보니 예술가 (4)
  3. 2010.04.26 나는 나인가? (7)
  4. 2010.03.30 만신창이 교육에 치료제 한방 (2)
  5. 2010.03.26 김예슬, 추락 또는 비상 (2)
빨간 미니스커트, 기다림, 김결 이야기


< 문수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제에 참여한 후 식당에서 >

김결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하지만 생일이 12월 28일이니까 어린 6학년이죠.

헉, 빨간 미니스커트!
결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와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제 속에 저와 많이 닮은 큰 얘를 편애하는 마음이 있었고, (말은 안해도) 결이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이는 아빠를 어려워하고, 아빠와 얘기할 때도 긴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결이가 6살 때 제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빨간 초(?) 미니스커트를 입은 결이가 "아빠"하고 달려왔습니다.
저는 눈에 거슬려 "안 예쁘다. 벗어라"하고 제 방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결이가 너무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에서 씼고 나오는 저에게 어머님이 "(어디서 얻은 옷인데) 결이가 아기스포츠단 갔다 오자마자 입고 나간다고 해서 너무 짧으니까 집에서만 입기로 했는데 너는 아이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냐?"며 말씀하셨습니다. 

한쪽에서 계속 울고있는 결이를 보며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빠는 아빠고, 아이는 아이인데, 아이가 내 맘에 안든다고, 아이가 내 틀에 안 맞는다고, 아빠는 수더분한 것을 좋아하는데 아이가 튄다고 마음에 안들어 하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아이의 특성을 특성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이도 그것을 느꼈는지 한 1년 지난 다음부터 관계가 많이 편해지고, 아빠도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둘, 그런데 전혀 달라!!
아이가 둘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큰 얘는 언어와 수를 아주 일찍 스스로 깨쳤습니다. 그런데 결이는 말하기가 아주 늦더니 2학년까지 쓰기를 못했습니다. 
부모 마음은 조급하지만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아이 말을 많이 들어주고, 시간이 되면 동화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가족과 친구의 기념일에는 편지대신 그림카드를 보내고, 시간만 되면 그림을 그립니다. 

부모 마음이 다 똑같아 속앓이도 했지만 5학년 때부터 동화책 읽기에 재미가 붙더니 지난 겨울방학 때는 (어렸을 때 책에 붙어살던 큰 얘는 심드렁한데) 매주 도서관에서 3~4권의 책을 빌려서 읽습니다. 

6학년이 되더니 어휘력도 많이 늘어 오빠와 말싸움에도 밀리지 않아 오빠 눈이 휘둥그레지곤 합니다. 

기다림의 미학, 제 때의 이치
결이를 보면서 조금 앞선다고, 조금 뒤진다고 일희일비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새삼 느낍니다. 
아직은 수학을 힘들어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풀지못하기 보다는 지레 질려서 안 풀거나 못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배움은 스스로의 힘을 길러가는 것인데 어른들은 그것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에 연연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참된 배움의 기회를 가로막고, 지연시킵니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더욱 기다림의 미덕을, 기다림의 참 의미를 알게해 준 결이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 애니어그램 수련 끝나고 결이가 책상 앞에 붙여놓은 글 - 글도 그림같고 결이가 쓴 글에는 항상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생깁니다. (애니어그램을 아시는 분은 아빠와의 관계가 어려웠는데 왜 6번일까 생각하실텐데 저보다는 할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P.S. 결이는 친할머니를 많이 닮았습니다. 여고 졸업하자마자 3대 독자였던 오빠의 손을 잡고 월남했던 어머님은 손재주가 좋으셨는데 "전쟁만 없었으면 미대에 갔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신비로운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결이가 "할머니 돌아가셨어요?"해서 왜 그러냐니까 "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니 정말 그날 오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영적 관계맺음은 우리가 경험하는 시공간을 넘어 우주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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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지윤 2010.06.17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이 얘기군요~~~^^*
    결이는.. 그림을 진짜 너무 잘그려요~ 할머니를 닮은거 같아요..
    글잘읽고 가요~^^

김결(6학년)이 흰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학교에서 2시간 그렸다는데
예술가가 따로 없네요.


나중에 아빠 생일선물로 하나 그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뒷면까지 다 그리는 것은 어려운지 앞면만 그려주겠다고 하네요.
어떡합니까? 그나마 감지덕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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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햇볕 2010.06.14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고보니 우리 남편 팔불출이었네요. 여기저기 애들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구먼요.ㅎㅎ

  2. 박지윤 2010.06.14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예뻐요~ 예술적인거 같아요.. 예쁜거보다도~ 정말정말 잘하네요~^^
    저도 이번에 여름에 놀러가면 결이에게 잘 보여야 겠어요~^^
    결이에게 부탁해봐야지~^^

  3. 김재승 2010.06.15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쁩니다^^

  4. 익명 2010.06.15 2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나는 나인가?

교육이야기 2010. 4. 26. 09:20

나는 나인가?

작은 교회 김영운 목사님을 만나면서 에니어그램을 접하기 시작한지 약10년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4월 22일~23일 볍씨학교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하는 에니어그램 수련에 참여하면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새롭게 느낀 시간이었다.

원래의 나, 현재의 나
에니어그램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둥근 원과 같이 완벽한 상태로 태어난다. 하지만 만 3살이 되면 원래 모습의 1/3로 줄어들고, 만 6살이 되면 1/9이 된다.

빙산은 물밖으로 나와 눈에 보이는 부분이 전체의 1/9이라고 한다. 빙산과 같이 참된 자아의 8/9는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는데 그 8/9를 탐색하는 과정이 에니어그램이다.

자기발견의 첫걸음은 만 6세로 돌아가 처음 받은 상처를 되살리는 것이다. 그 상처는 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부정적인 아버지, 부정적인 어머니, 부모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 아버지 어머니 모두 긍정적인 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9가지의 조합이 9가지 유형의 인성(personality)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내가 맛본 자유
처음 받은 상처를 되돌아보면서 얼마나 슬프던지, 에니어그램 1번 유형인 나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참 많았다. 아버지가 싫고, 무섭고, 그런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나는 잘 하려고, 아버지처럼 안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다.

처음 만 6살 때의 상처를 떠올리는데 얼마나 아프고, 슬프던지...아마 혼자서 기억을 되돌아봤으면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많은 1번, 4번, 5번 유형이 같이 과거를 회상하니 서로의 슬픔, 서로의 상처, 서로의 아픔이 동화되고, 느껴지며, 서로가 치유되는 시간이 되었다.

과거를 어른과 아이가 같이 돌아보는 것도 얼마나 좋던지, 어른은 아이를 통해서 만 6세의 기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부모의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다.
아이는 어른의 아픔을 보면서 어른들도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동정이 아이를 성숙하게 할 수 있다. 그 슬픔 속에서 40대 중후반이 되어서도 6살의 내가 내 안에서 끔틀대고, 6살 나의 그늘 안에서 40대 중후반이 된 내가 살고 있는 현실(reality)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용서하고, 6살의 나를 자유롭게, 어린이답게 놓아주었다.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상처투성이였던 아버님의 삶과 아버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눈물을 흘렀다.

아이와 나
김결(초등 6)은 다행히 부모의 사랑을 느끼면서 산다.
부모와 아이를 보며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마음보다 -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을 주는 부모는 얼마나 적은가 - 아이 스스로 느껴지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아이를 통해, 아이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참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기 전에 내가 사람이 되는 과정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에니어그램의 질문
What does it happen to me, again?

왜 우리는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안하고, 안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하면서 살까?
왜 나는 나의 함정에 빠져 나의 삶과 관계에서 실수를 반복할까?
왜 우리는 이렇게 속좁게, 자기에 갇혀서 살까?

에니어그램에서는 먼저 '나 자신을 알라‘고 한다.
나 자신을 아는 과정, 그래서 내가 향상되는 지시등을 인식하는 과정이 에니어그램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바둥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정확히 알고, 나에게 있는 것을 조금씩 향상시켜가는 것, 보다 나은 통합의 방향으로 살려고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컴퓨터를 잘 알아야 제대로 쓸 수 있듯이, 자동차를 잘 알아야 바르게 운전할 수 있듯이 나를 잘 아는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다.

우주의 일부인 나를 소중히 하기
우리 몸은 소우주이다. 지구 표면의 2/3가 물이고, 우리 몸의 2/3도 물이다. 지구에는 오대양 육대주가 있고, 우리 몸에는 오장육보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우주와 통한다.

그런데 우리를 움직이는 지성, 감성, 본능이 서로 충돌한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본능과 느낌, 본능과 생각이 따로 논다.
이것을 통합하는 것, 지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하면 우리는 우주 의식의 문에 들어선다.
이 문의 기초는 나만 잘되려는 욕망, 내 식구만 사랑하는 것, 이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일찍이 우주의식에 도달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느낌은 - 시공간이 제한된 시각적 망상에 의해 - 우주와 분리된 존재로 스스로를 경험한다. 이러한 망상은  개인적 욕망, 자기와  아주 가까운 소수의 사람에 대한 감정으로 우리를 제한하는 감옥이다. 우리의 의무는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과 본래의 아름다움 안에 있는 자연계 전체를 끌어안는 뜨거운 동정심으로 우리를 감옥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다.”
“As a human  being is a part of the whole, called by us "universe" - a part limited in time and space, he experiences himself, his thoughts and feelings, as something separate from the rest, a kind of optical delusion of his consciousness. This delusion is a kind of prison for us, restricting us to our personal desires and to affection for a few persons nearest to us. Our task must be to free ourselves from this prison by widening our circle of compassion to embrace all living creatures and to the whole of nature in its beauty.”

현실에서, 계산적인 관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이제 그 기계적인 삶의 껍질을 벗고 우주로 한걸음 다가가는 길, 그 넓고, 크고, 아름다운 삶의 길을 손을 맞잡고 걷자.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그렇게 우리를 축복하자.

P.S. 상업화 = 본래적 의미의 상실
몇 년 전부터인가 에니어그램이 유행하고, 기업교육으로까지 채택되면서 급속히 에니어그램이 상업화되고 있다.
평소 Y실무자들도 에니어그램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작년 중순 평생학습센타에서 민간단체에 에니어그램 강사를 무료로 파송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신청했다.
매일 정신없이 바쁜 5년 이상된 실무자들을 설득해서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내어 8회 강좌를 진행했는데....허걱, 완전 장사꾼이네.
에니어그램 전문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영성수련이 아니라 약장수 수준의 그저그런 문화센터 강사에 불과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프로그램과 강사가 넘쳐난다.
에니어그램을 한국에 처음 도입했던 김영운 목사님의 말씀처럼 권력, 돈, 명예에 초월하지 않으면 (돈벌이 되는) 자격증의 위험성을 재삼 느끼는 그런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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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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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종훈 2010.05.06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격증도 그러한데 하물며 배타적 권리인 면허증은 헐헐헐

  2. 다른 목소리 2010.05.07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면허증 생각은 못했네요. 저는 면허증이라고는 운전면허 하나라....면허증에 얽힌 이야기 한번 써주시죠^^

  3. 박지윤 2010.06.08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프로그램 참석하면 좋을거 같아요~^^*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어요~

  4. 장철봉 2010.06.25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기현 권사님 안녕하십니까?
    이영희 총무님도 잘 계시죠?
    또 산, 결 도,,,
    보구 싶습니다
    예전 가산동에서와 양재동에서, 또 한양대에서의 작은 교회 예배 기간이
    새삼 떠 오름니다
    올리신 글 읽느라니 코 끝이 찡 했습니다
    다음에 또 들릴께요

  5. bow and arrow games 2011.08.20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로그램 참석하면 좋을거 같아요 ^^

  6. Link 2012.04.05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키와 대을안가지고 탔네.참고로우집 2인 이미엘베이터는 내려가고있고.

내가 교사가 돼도 되나?
최영란, 이매진 출판사

교육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뜨거운 교육열로 우리나라가 이만큼 먹고살만한 나라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칫 교육이 부를 대물림하고, 빈부격차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교육받을수록 바보로 만드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숨막힐듯한 입시교육의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여섯 곳을 다니고, 학습지 세 개 이상을 하는, 대한민국 교육열에 찌든 어린이였다.....입시교육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과정없이 살다가 나처럼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기 소질과 적성하고는 다른 길 위에서 맹목적으로 일류 대학을 희망하고, 그렇게 들어온 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요즘 내 주변에는 자기 꿈하고는 별개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공무원이 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생활이다......교육이 인생의 가치와 개인의 공유한 방향성을 찾아 그것을 개발하고 실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나 죽은 것 같은 무의미한 삶을 부추기고 있다.”    (본문 중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교육이 숨막히고, 앞이 안 보일수록 역설적으로 교육개혁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상황을 살아온 대학생들의 글이다.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그들이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글을 통해 우리 교육을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독특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류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도 모른채 청소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놓고 있는 모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 학생은 “지금까지 내가 겪은 최악의 수업도 미술, 최고의 수업도 미술인 것이 신기하다.”며 한국에서 보낸 중학시절과 뉴질랜드에서 보낸 고교시절을 비교한다.
이 학생은 중학교 미술 시간마다 미술을 못한다고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았는데 보다 못한 어머니가 미술학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비싸지도 않은데 괜히 아이 고생시켰네”라며 어느날 어머니가 학원에서 5만원 주고 사온 작품으로 수행평가를 치룬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다. 반면 뉴질랜드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년 동안 자신이 정한 주제로 사진을 200장 이상 찍고, 추상적인 유화, 아크릴화, 서예 등 별짓을 다하면 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만족감을 중학교 미술시간의 경험과 오버랩시킨다.

“가장 그리운 것은 수업에서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던 수많은 영감들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던 과정들이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개성있는 자아를 만들어갔다.”     (본문 중에서)

곧이어 이 학생은 이렇게 덧붙인다.
“한국 미술 선생님은 참 무미건조했다. 뉴질랜드 미술 선생님은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 등이 모두 녹아있는 수업을 했지만, 한국 선생님은 ‘미술을 가르치러 매주 금요일 3~4교시만 들어와서 그냥 훑고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나라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는 것보다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한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이들이 쓴 글의 제목만 봐도 우리 교육의 비참한 현주소를 알 수있다.

오답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다./ 나는 길을 잃었다./ 늘 전투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나는 개새끼다’를 외치고 난 뒤/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에 타다 남은 숯 검댕이다./ 방 한 바퀴를 돌리고도 남는 문제집, 그리고 천장까지 닿는 책/ 강박증 환자로 만든 한국의 교육열/ 내 생각과 의지가 없는 삶/ 한국에서는 낙제생, 뉴질랜드에서는 예술가/ 너무 수준 낮은 질문이라 답변할 가치가 없다?/ 나는 학교 부적응자다 

작은 공간, 그러나 희망의 틈새 - 잊지못할 선생님.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가? 우리교육의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우리 모두는 패배자에 불과한가?

다행히 이 책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이들이 잊지못하는 교사들이 있다.

한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점심시간에 요구르트와 귤을 한 봉지씩 사들고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다. 점심식사 후, 교장선생님은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 논어의 한구절 등 짧은 강의를 한 후 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 궁금한 것이나 고쳐줬으면 하는 사소한 의견을 귀기울여 들어준다.

“그렇게 교장 선생님과 만나는 경험은 횟수를 떠나 학교와 스승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울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문 중에서)

또 한 학생은 1등을 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와 만성피로에 시달리다 결국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상담선생님이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 같은데”라며 위로해주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치유된 경험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모를 것이다. 십년이 지났고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도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선생님이 보여주는 10만큼의 관심이 받아들이는 아이들한테는 놀랍게도 만 배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만난 새로운 자각
더욱 희망적인 것은 이들이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절절히 토해낸 후,
그 상처투성이의 아픔 뒤에 (소록히 새싹이 나듯이) 삶의 의미, 배움과 교육의 의미,
교사의 역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싹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이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사람을 다루는 교육 활동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인간의 본질과 존재를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과목이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사가 되는 길은 ‘내가 아닌 나’로 살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진행돼서는 안 된다. 삶을 견디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교사가 되는 길이어야 한다.”             (본문 중에서)

“부모가 되려면 라마즈 호흡법이나 요가, 분유 타는 법을 배울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와 가치관부터 정립해야 한다.....예전 부모님은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자식에게 윤리나 양심에 관한 교육은 기본적으로 시켰지만, 요즘 부모들은 기본적인 예의와 윤리보다는 자기 자식이 남보다 뛰어나고 앞서 나가기를 원하는 마음만 갖고 교육을 한다....부모들에게 교육과 책임의식을 심어주고 교육에 대한 올바른 생각부터 정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이 싹트듯이,
처절한 입시교육의 상처 속에서도 자기다움의 발견,
친구에 대한 관심과 팀워크를 통한 연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아름답게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과 불안, 두려움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철저히 분해하고 나면,
비로소 나의 인생, 나의 길, 나의 빛이 제대로 드러나고,
내가 나답게 사는 것 만큼이나 내 친구의 삶이 소중하고, 귀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만신창이의 교육현장에서 혼신을 다해 각자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저자인 최영란 교수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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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mdaihage 2010.04.0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영란교수님의 조용하면서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릅니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고민하지 않고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교사도 부패하기 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 많은 교사들이 부패해간다해도 교수님과 같은 분이 계시고 또 그 뜻을 함께 나누는 제자들이 있어서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 틈에 살짝 끼고 싶네요^^

    • 다른 목소리 2010.04.05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모두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는 살짝 끼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요~~ㅋㅋ 함튼 중심이든 옆 자리든 의미있는 삶의 굴레에 함께 함이 중요하죠.

또 다른 김예슬을 위해
추락을 경험하지 못한 자, 비상을 알지 못하니


일상에 바쁜 나는 김예슬 님의 글을 뒤늦게 만났다. 인터넷 공간에서 <대학을 거부한 고대생>이라는 문구를 만나고 여러가지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정작 그녀의 글을 직접 읽은 것은 며칠 안된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누군지도, 그녀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 글에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리고 <창비논평>을 통해 소설가 김사과 님의 글을 읽었다. 
그 글의 진지함과 솔직함에 마음이 끌리지만 몇가지 문구는 나에게 걸린다. 
첫 번째는 탈학교 아이들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안학교는 중산층 부모의 값비싼 옵션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타인의 삶이 놓인 중요한 문제를 누구와 논쟁할 생각은 없다. 다만 김예슬 님과 김사과 님의 글을 매개로 내 생각을 나누고 싶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버리는 것
 탈학교 아이들 다수가 대학으로 돌아갔으니 탈학교 운동이 실패했다는 말은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실패니 성공이니 하는 것을 너무 가르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삶의 자유로움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나는 실패나 성공을 떠나 그 근저에 놓여있는 우리의 존재방식과 대면하고 싶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정한 삶의 순간, 배움과 선택의 순간, 정말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세상과 온몸으로 대면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우리는 인생에 그렇게 임하고 있는가?
아니 그렇게 임한 순간이 있기나 한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런 순간에 작동하는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류대학, 경제적 안정성, 사회적 지위....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다 중요한 일이다.
일류대학을 나오고, 좋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면 그 사회적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하지만 정말 그것을 다 선택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은 정말 중요한 선택을 회피하도록 하는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 인생은 짧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저런 좋은 것을 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사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한 순간은, 바로 무언가를 버린 순간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도 많은 순간, 내일을 위해 오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버리며 산다. 사랑, 우애, 지지, 격려,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 이웃과 따뜻하게 나누며 사는 것......내일을 위해 우리가 버리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것을 버리면 안될까?

김예슬 님이 언젠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적극적인 선택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실패해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당하게,
인생을 건 선택, 모험에 가득한 선택, 앞을 모르는 선택.

나는 사회에서 정해진, 사회에서 강요하는 길을 벗어나 어떤 선택을 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김예슬 님과 함께 울고, 웃고 싶다.

주류문화를 벗어난 불안과 흔들림, 그 너머에 있는 것
우리 아이들(중 2, 초등 6)은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에 다닌다. (나는 가까운 곳에 대안학교가 생기지 않았다면 대안학교를 찾아 일부러 먼 곳까지 아이들을 보내기 보다는 일반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볍씨학교 학부모들은 정말 다 평범한 사람들이다.(중산층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경쟁중심, 학습중심의 일반학교가 싫어서 대안학교를 선택했지만 항상 불안하고, 흔들린다.
주류문화에서 벗어난다는 것,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이번 호에는 대안학교 출신 청소년 여러 명의 글이 실렸다.
그 글의 흔들림, 그 글의 방황....그 아이들은 다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소위 일류대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도 있고,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아이도 있다. 무엇이 옳고 틀리겠는가? 그 불안감 속에서 자기인생을 살아가는 힘, 그 진지한 고뇌가 가장 풍요로운 인생의 자양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고뇌의 힘을 잃어버렸다.
스펙에만 매달리고, 박스 안에서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
그래서 다 허기지고, 거칠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그래서 느끼는 충만함을 상실하면, 권력욕과 물욕으로 그 허기짐을 채우려한다.
소위 일류대를 나오고, 높은 자리에 있지만 증오심으로 가득한 사람들,
내가 아니라 너 때문에, 좌파 때문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오직 밟고, 밟히는 서열적 경쟁만이 그들의 인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도 불쌍하다. 가진 것은 많지만 영혼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영혼은 진실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 스스로가 진실로 답하지 않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점차 메말라간다.
오래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그들의 침실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전쟁 대신 사랑을”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잘나고 못나고,
성적에 따라 일렬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따뜻한 손길과 격려의 눈빛이다.

김예슬 님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고대 경영학과 다니던 잘난 사람이니까 일으키는 파문이라고 냉소하지 말자.
대안학교 다니는 청소년들의 흔들림에도 좋은 부모 만나서 살만하니까 하는 치기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자.
누구도 답을 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에 함께 아파하자. 

그래서 그들이 사람을 짓밟고 사는, 이 치졸한 세상 너머에서
용기있고 당당하게,
가난해도 떳떳하게,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살아가도록 기도하자.

추락을 경험하지 못한 자 비상을 알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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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mdaihage 2010.03.26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스를 통해 김예슬양의 용기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자보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20년전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많은 대학생들이 하던 고민, 바로 그것이었으며 더 나아질 것도 없이 더 막막한 현실만 남아있는 대학의 모습이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내가 왜 이곳에와 있는지, 무엇을 위해 공부해왔는지를 고민하는 많은 대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끊이지 않는 경쟁의 테두리안에서 사람다운 모습들을 잃어가는 이땅의 학생들이 대체 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김예슬양처럼 자신에게 부딪친 이런 고민들을 세상에 꺼내놓고 현실이 바라는 길이 아닌 자신이 바라는 길로 인생의 키를 전환한 용기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 다른 목소리 2010.03.27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예슬 양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젊은 시절, 낭떠러지 끝에 서있던 느낌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더 관심갖는 것은 '그 선택의 순간''선택의 힘'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형성될까요? 김예슬 양 같은 극적인 선택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들 모두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살지요. 그럴 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진정성과 자기다움 보다는 주어진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요. 조금 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려면 불안해지지요. 그래서 자기답기 보다는 진정한 삶과 직면하기 보다는 그냥 모나지 않게 주어진 길을 (어쩔 수 없이) 걸어가지요. 그것이 삶일까? 아니면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