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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으면 행복할까?
- 시민교육지침서(2)-

행복, 그것은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사랑하게 되는 것,
젊은 가슴에 사람들이 한 번도
불러주지 않은 신비한 이름을 간직하는 것,
부드러운 손 안에서 은밀한 말을 가만히 말하는 것,
말로 할 수 없는 결합을 온화함으로 받아들이는 것,
흩어지는 물을, 날아가버리는 구름을 시샘하는 것,
한 마디 음성에 떨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을 느끼는 것,
사람들이 좋아하고, 질투심으로 따라가는 발자취를 아는 것,
빛나는 낮을 꿈꾸는 것, 밤을 불사르고 비틀어버리는 것,
무엇보다 영혼이 잠들어 있는 나이를 슬퍼하는 것,
여인들의 모든 시선을 받으며 항상 괴로워하는 것,
4월의 모든 덤불, 진홍빛 하늘의 불꽃들 가운데 고통을 견디는 것,
하나의 시선, 한 송이 꽃, 하나의 태양만을 추구하는 것이려니!

- 빅토르 위고, 그래서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중에서 -

목적: 이 장에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우리는 하루하루 행복을 추구하면서 산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는 행복이 사실은 사람, 순간, 감정에 따라 다른 것이어서 자칫하면 “행복을 추구하나 매일매일은 불행하게 사는” 모순된 삶을 반복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편견을 들여다보고, 행복이라는 복합방적식을 함께 풀면서, 주체적인 행복찾기를 해보고자 한다.

슬로 라이프의 제창자인 쓰지 신이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말의 배후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지 않을까 싶다. 즉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커다란 고정관념, 표현이 쉽고 어려움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고정관념은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을 막아 시를 쓰거나 서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나누거나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고를 창조해내는 것을 힘들게 만들곤 한다.
나는 ‘행복이란 이런 것’이라고 하는 집단적인 고정관념에 대해 ‘내 행복은 내 행복이야. 좀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행복의 경제학, 쓰지 신이치, 서해문집) 

1)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행복에 대한 첫 질문,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심지어 요즘에는 “헤어진 사랑보다 더 아까운 내 펀드”라는 광고까지 등장했다.

행복에 역행하는 한국사회?
경제는 성장하지만 행복은 떨어지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문제 있는 사회, 어리석은 집단으로 부를 법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우리의 자화상이다. 한국은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양적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일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을 2006년 가격으로 환산한 것이 <그림1>이다.

<그림1> 일인당 실질 GNI와 행복지수 변동 추세

   1990 1996  2001  2003  2006
 일인당GNI  835  1284  1416  1548  1756
 행복지수  60.09  66.59  65.19  47.25 48.50 

행복지수 중 1990년, 1996년, 2001년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 조사(World Values Survey)에서 한국의 결과이며, 2003년과 2006년은 통계청의 사회조사결과이다.....(중간 생략).....1990년과 2006년을 비교한다면 실질소득은 1990년과 대비하여 2006년에 110% 증가했지만 행복지수는 오히려 22% 떨어진 것이다. 이 수치만 본다면 21세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경제와 행복은 거꾸로 가고 있다. 

2) 행복이라는 복합방정식 

<읽기자료 1>

하랄드 빌렌브록은 「행복경제학」(미래의 창, 2007)에서 “미국은 1957년과 현재를 비교할 때 일인당 자동차는 2배, 식기세척기는 8배, 에어컨은 5배, 집은 2배로 커졌다. 40년 전에는 있지도 않던 초고속 인터넷, 휴대폰, 비디오 게임 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인은 1957년보다 더 불행하다.”며 “국민 총생산(GNP)이 8,000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부와 함께 행복이 증대되지만 그 경계를 넘으면 경제적 성장과 주관적인 행복은 연관성을 상실한다.”고 한다.

<읽기 자료 2>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
(행복경제학, 조승헌, 녹색대안을 찾아서, 대화문화아카데미 엮음)
행복은 복합적 산물로 여러 인자들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먼저 개인의 조건은 선천적인 것과 살아가는 동안 바뀌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성격, 유전자, 성별은 선천적이다. 돈, 결혼, 사회적 지위, 종교는 후천적이며 건강은 두 가지 측면이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타고난 성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성격이나 유전자 같은 타고난 기질이 행복의 절반정도를 결정한다고 한다. 나머지 행복을 결정하는 것 중에 건강, 소득, 환경, 사람과 기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 사회분위기와 문화요소 등이 있다. 
....(중간생략).........
돈과 같은 후천적 조건들이 사회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제로섬(zero-sum)의 성격이 있는 반면, 행복수준은 상대적 비교나 경쟁의 개념이 없는 특성이 있다. 돈과 사회적 지위는 한정되어 있다. 내가 가지면 너의 몫은 없어지거나 그 만큼 줄어든다. 나아가 상대방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위화감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행복한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은 남에 대한 배려나 사회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담당하며 나아가 경제적 생산성도 높다는 것이 실증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읽기 자료 3>

“무엇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가”를 주제로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단연구는 3개 집단, 총 814명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서 60여년 이상 그들의 전 생애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 결과를 「행복의 조건」(조지 베일런트, 프런티어)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성공적인 인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꿰어 맞추기에 인생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불가사의했으며, 난해하고 모순투성이였다.” (13)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다.’ 행복의 조건에 따뜻한 인간관계가 필수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형제자매나 친척, 친구, 스승과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17)
“성인의 발달과정을 평가하기 위해...나는 여기서 여섯 가지 연속적 과업을 모델로 삼았다. 첫째, 청소년기에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설 수 있는 '정체성(idendity)'을 확립해야 한다. 둘째,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상호관계를 통해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친밀감(intimacy)’를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성인은 사회는 물론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직업적 안정(career consolidation)’을 이루어야 한다. 넷째, 더 넓은 사회 영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생산성(generativity)’ 과업을 이루어야 한다. 다섯째, 다음 세대에게 과거의 전통을 물려주는 ‘의미의 수호자(keeper of the meaning)’가 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통합(integrity)’이라는 과업을 완성함으로써 개인의 삶은 물론 온 세상의 평온함과 조화로움을 추구해야 한다.”(88~89)

3) 행복에 대한 나의 기준은?

디오게네스는 조의조직(粗衣粗食), 즉 거칠게 먹고 험하게 입고 산 사람으로 유명하다. 형편이 구차스러워 고기를 사 먹을 수 없었던 그는 값싼 푸성귀를 구해 깨끗이 씻어 먹고는 했다. 그가 시냇가에서 푸성귀를 씻고 있는 것을 본 유복한 친구 아리스티포스가 지나가다가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고개 수그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을...”
아리스티포스를 돌아다보면서 디오게네스가 응수했다.
“조의조식하는 법을 조금만 알면 고개를 숙이고 알랑방귀는 뀌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이윤기, 무지개와 프리즘, 93쪽)

<읽기자료 1>

「부자나라 가난한 국민, 일본」의 저자인 카렐 반 월프런은 “일본은 풀이 죽어 기운이 없는 나라다”라고 말하며 외국인들이 느끼는 일본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나열하고 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이 이렇게도 많을까?
우울하고 심심해 보이며 멍한 표정을 한 대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것일까?
여성들은 세계에서 가장 늦게 결혼하는 것일까? 또 결혼은 했어도 자식을 가지지 않으려 하는 젊은 여성이 이렇게도 많은 것일까?
냉랭하고 공허한 관계의 신혼부부가 이렇게도 많은 것일까?
샐러리맨들은 만원 전철 속에서 긴 시간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출근하는 것을 매일같이 받아들이는 걸까?  (63-64, 행복의 경제학)

안타깝게도 이 질문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체크해보기>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 - 심리학자 데이비드 G. 마이어와 팀 카서
1. 당신은 많은 부를 얻는 것보다 인간적인 성장, 가족에 대한 헌신과 같은 비물질적인 목표를 지니고 있는가?
2. 당신은 규칙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가 ?
3. 당신은 자주 웃고 있는가?
4. 당신은 가까운 친구를 지니고 있는가?
5. 당신은 지역사회와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가, 이웃을 잘 알고 있는가 6. 당신은 해 볼만하다고 느껴지고 힘에 부치지 않는 직업이나 취미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늘 내일이 기다려지는가?
7. 당신은 건강한가,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는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가?
8. 당신은 과거의 좋았던 일들을 자주 돌아보는가?
9. 당신은 종교적인 사람이거나 영적인 사람인가?
10. 당신은 살아가면서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들, 대의명분, 여러 활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가 ?             
(아이들과 함께 단순하게 살기, 마리 셜록, 역사넷, 83쪽)

<스스로 질문하기>
1.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그 이유는?

2. 내가 생각하는 행복관(觀) 또는 행복론은?

3. 아이의 행복을 위해 우리 아이가 꼭 갖추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중에 우선순위 3개를 고른다면, 이유는?

<읽기 자료 2 - 평범한 이웃들의 목소리>

행복이란 
                          갈매기의 꿈

행복이란 남이 뭐라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나만 좋으면,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비싼 스테이크를 먹는 것보다 깨끗한 먹거리를 정성껏 준비해서 차려놓은 소박한 밥상에 감사하고, 아이의 백점짜리 시험지보다 자연 속에서 뛰놀며 밝게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에 행복해하고, 명품옷보다 내 몸에 꼭 맞는 편안한 옷이 더 좋고....

행복의 기준이 조금씩 조금씩 옮겨감을 느낍니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와지면 행복해질 것 같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는
나 혼자 독불장군처럼 눈 가리고 귀 막으면서 ‘나는 행복해’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등대 속에서 촛불님들 속에서 함께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갈 때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행복에 관하여
                         자유부인

스스로 정해놓은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규정지은 나(자의식)를 넘어서는 기쁨!
학교 혹은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잣대에서 자유로워져 참평화를 내 안에서 만들어 가는 과정...
어떻게? 책을 통한 깨달음..사람간의 소통으로!
하루하루를 새로운 시각과 조금씩 열려지는 가능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낼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고 허무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생살이의 다른 조건들, 예를 들면 물질, 건강, 외모, 학벌 행운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물론 사람에 따라 (근기, 그릇, 인성)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냐에 행복과 불행의 변수가 클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나의 그릇을 키우고 인격을 성장시키는데 정진하자!

Y 등대 모임에서 정한
우리가 만드는 행복의 기준

- 행복이란 남을 즐겁게 해주는 노력의 부산물이다.
- 행복은 얻음보다 버림을 통하여 얻어진다.
- 행복은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만큼 얻어진다.
- 불행과 행복은 공존관계이다.(고통 뒤에 오는 휴식에서 행복을 느낀다.)
- 남을 불행하게 하면서 번 돈과 권력은 자신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 끼리끼리 모여서 행복재(:수다, 웃음)를 소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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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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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지윤 2010.08.12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이란 타고난 기질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 부분에 관한 거~ 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적이있어요~ 돈이 많다고 행복한건 당연히 아니죠~ 돈은 다만 생활을 좀더 수월하고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 수단인거 같아요~ 밑에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 그중에서 봉사활동 전부터 하고싶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해서 아가들 크면 같이 나가고 싶네요~^^

  2. visit this url 2012.05.02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고물한컵마면물때문에포만감이 장난아니랍니다

경쟁이냐? 협력이냐?

“모든 걸 잃는 루저가 될 것인가, 모든 걸 갖는 위너가 될 것인가?”
- 승자독식 시대를 살아가는 최고의 전략 -

"키 180cm 이하 남자는 전부 루저(loser)"

앞의 문구는 「경쟁의 법칙」(이면희, 토네이도, 2009)이란 책의 카피이고, 뒤의 문구는 소위 ‘루저 논란’을 일으킨 KBS <미녀들의 수다> 한 출연자의 발언(2009년 11월) 이다.

우리는 경쟁을 너무도 당연한, 심지어 운명적인 어떤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경쟁에 내몰리고, 청소년들은 루저(Looser)라는 표현을 너무도 쉽게 내뱉는다. 이런 사고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승자는 승리를 위해, 패자는 생존을 위해 산다......단 1점의 차이로 대학입시나 공무원 시험에서 패배의 쓴잔을 들이킨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경쟁에 따른 차이가 남은 인생을 좌우한다. 어디 그뿐인가? 단 한명을 뽑는 취업이나 단 한명의 우승자를 뽑는 콘테스트는 또 어떤가? 티끌처럼 작은 차이로 세상이 달라지고 만다.”  (경쟁의 법칙, 17~18)

지나치리만큼 솔직하게 표현된 이런 경험은 누구나 겪은 바 있다. 심지어 저자는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의 삶에 두 번째 기회 따위는 없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가 경쟁만을 찬영하는 것은 아니다. 책 뒤쪽에서 저자는 “경쟁과 협력이 적절히 조화된 조직이 경쟁력있는 기업”이라고 말하며 (경쟁과 협력의) ‘행복한 균형’(happy balance)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협력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협력이다. 경쟁이 중심에 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이런 저런 요소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매력도 경쟁력이다.”“매너도 경쟁력이다.” 심지어 “인성도 경쟁력이다.”라는 표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경쟁을 기본에 놓고, 협력을 보완하는 것이 가능할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쟁에 필요한 자질과 인성, 협력에 필요한 자질과 인성은 상당히 다르고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경쟁과 협력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 꽃들에게 희망을 >
트리나 포올러스 지음, 소담

“참된 자신이 되고자 했던 한 애벌레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이자 심오한 인생철학을 흥미있는 이야기와 그림으로 엮은 동화 책이다.

주인공 애벌레는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것보다 더 나은 생활이 분명 있을거야”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애벌레와 함께 - 그 끝은 구름에 가려있는 - 높이 솟은 애벌레 기둥을 기어오르는, 밟고 밟히는 경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결국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 기둥을 벗어나 전혀 다른 길을 걸어야 함을 깨닫는다.

< 토론주제 >
1. 경쟁은 꼭 필요한 것일까? 경쟁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일까?

2. “나비란 네가 앞으로 될 그 무엇이란다.”(본문 중)는 말처럼 자신의 개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만개하여 나비가 되는 과정에서 경쟁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3. 좋은 경쟁과 나쁜 경쟁이 있을까?

4. 부지런한 사람은 성공하고, 게으른 사람은 실패한다는 것은 사실일까?

5. 기둥을 내려오는 애벌레는 계속 흔들린다. 애벌레는 어떻게 나비가 되는지 아직 모른다. 사실 주어진 길을 벗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흔들린다. 우리 삶이 흔들릴 때 그것을 넘어서는 주체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 깊이 있게 읽기 >
1) 거꾸로 생각해봐
(거꾸로 생각해봐 2, 낮은 산, 경쟁이 없으면 우리는 발전하지 못할 것인가? 강수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19살 청소년이 2000년에는 264명, 2003년에는 297명, 2005년에는 279명, 2006년에는 233명이 자살했다. 휴일을 빼면 매일 한 명꼴로 자살한 셈이다. 2005년부터 2008년 10월까지 서울시 정신보건사업인 ‘블루터치’ 핫라인에 들어온 ‘자살 위기 상담’을 분석한 결과, 십 대 청소년의 상담 이용률은 이삼십 대 다음으로 높았다고 한다. 청소년의 자살 동기로는 성적과 진학 문제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는 가정불화와 외로움, 경제적 어려움, 따돌림 같은 친구와의 불화 순이었다.....아이가 친구들과 서로 우정을 나누는 관계보다는 오로지 경쟁 상대라는 잠재적 적대 관계를 상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11~12)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팔꿈치 사회’, 즉 옆 사람을 팔꿈치로 쳐내야만 나의 생존이 보장되는 치열한 경쟁 사회가 된 지는 50년밖에 안 된다. 서양에서도 길게 잡아 200년이다. 요컨대, 인간 사회가 처음부터 경쟁 사회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경쟁보다는 협동이 인간적인 삶을 사는 데 더 필요했다. 비바람이나 추위를 피하거나 다른 여러 생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끼리 협력해야 했다. 그런 원리로 살아 온 기간이 무려 300만 년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협동을 근본 원리로 삼아 살아왔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쟁사회가 되면서 갈수록 치열한 팔꿈치 사회, 경쟁 사회가 되고 말았다.”  (18)

2) 협력과 공유는 생존의 조건
....“다행스럽게 우리 앞에는 비관적 상황만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의 새싹도 돋아나고 있다. 협력(개방)과 공유에 기초한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력과 공유는 아이폰 충격에서 보듯이 혁신의 화두다. 또한, 협력과 공유는 지구촌이 직면한 기후와 에너지, 그리고 금융개혁과 균형성장 문제들이 내포하는 ‘집단행동의 딜레마’의 해결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협력과 공유가 시대정신이 됨에 따라 교육 등 사회인프라와 제도 등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에 따라 협력과 공유는 다양한 형태와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다. 물론,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경쟁과 사유(私有)가 지난 수 세기를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중간생략).....

“혁신의 동력으로 협력과 공유의 부상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약화된 호혜성이 사회운영의 원리로서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서도 혁신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 기업은 내부뿐만 아니라 기업간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위계적 조직과 수직적 계열화를 수평적 네트워크로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협력과 공유는 차이를 전제로 하기에 차이를 가치로 보는 인식은 증대할 수밖에 없다. 즉 협력과 공유가 사회 구석구석 확산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여전히 경쟁에 의존하며 최고를 만들어내려는 데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이분법적이고 수직적인 사고와 조직과 리더십은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며 모노컬러를 강요하고 있다. 협력과 공유라는 시대가치를 외면하는 교육과 리더십은 공동체를 이류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루저일 수밖에 없다.”
- 최배근(건국대 교수·경제학) 경향신문, 2010년 08월 07일

< 오래된 미래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녹색평론사

이 책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티베트 고원 위의 오래된 문화의 지방 라다크에서 얻은 16년 이상의 경험이 나의 대답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나는 우리의 산업문화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되었다. 라다크로 가기 전에 나는 ‘진보’의 방향은 불가피하며,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제는 그렇지 않다. 라다크는 나에게 미래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었고, 엄청난 힘과 희망을 주었다.”

문화인류학자인 호지 여사는 서구인으로는 드물게 서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원시적인 라다크를 경험한다. 하지만 서구문화가 빠르게 들어오기 시작하고 극적인 두 문화의 충돌과 대조를 강력하고, 생생하게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호지 여사는 오직 유일한 방식인양 간주되는 산업 단일문화의 파괴성을 목도한다. “라다크에서 나는 진보로 인하여 사람들이 땅에서, 서로서로에게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자신에게서 분리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자본 및 에너지집약적 경향은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존중과 자립을 증진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을 떠받치는 다양성을 보호하고, 지역중심의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조건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주장하는 ‘오래된 미래’이다.

< 토론주제 >
1.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적어보기

2. 협력과 배려로 상징되는 라다크 공동체와 개인주의와 경쟁으로 상징되는 우리사회를 비교해보기.
 
3. “라다크로부터 배운다.”고 할 때 그 내용은 “자립, 검소, 사회적 조화, 환경적 지속성 및 내면적 풍요와 평화”이다. 라다크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생하게 묘사해보기.

4.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처럼 과거의 긍정적인 문화와 전통으로부터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할까? 협력과 배려로 이루어진 삶의 방식을 현대사회에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는(독일에서 10년 이상 지낸 르완다인 은세큐예 비지마나) 즉석식품, 빠른 자동차, 자유로움, 익명성, 이 모든 것에 몹시 놀랐다. 이삼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거죽 밑 -외로움과 불행, 부정의와 낭비-을 보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환상은 하나씩 깨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는 그 자신의 문화가 서구가 잃어버린 많은 긍정적인 자질들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서구사회를 내부로부터 경험한 그는 아프리카에서의 서구식 개발의 무용성과 부적절성을 굳게 확신하게 되었고, 토착적이고 좀더 자립적인 대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2-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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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ace car photos 2011.09.21 0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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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삶과 대안적 삶
-대안적 삶의 지평 넓히기(2)-

   Photo by 윤명렬 (전문사진작가인 윤명렬 선생께서 독특한 사진기법으로 찍은 몽골 사진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혼합이 대안이라는 주제와 연결되는 것 같아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껴라.
농장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근심 걱정을 떨치고 그날 그날을 살라.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
혼자인 경우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우라.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라.
할 수 있는 한 생활에서 웃음을 찾으라.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라.

-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

목적 : 이 장에서는 책과 읽기 자료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를 살펴본다. 사실 삶의 가치나 가치관, 가치의 우선순위라는 문제를 우리는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가치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다. 고급차를 살 것인가, 경차를 살 것인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가/ 명품 옷을 살 것인가, 브랜드를 살 것인가, 공정무역 제품을 살 것인가/ 대형마트를 이용할 것인가, 재래시장을 이용할 것인가, 생협을 이용할 것인가 등등 우리는 매 순간 가치선택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민 개개인의 가치선택이 모여 어떤 사회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가치선택이 결국 나와 우리 가족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1) 모모
(미하엘 엔데/ 비룡소)
깊이 읽는 글 - ‘미하일 엔데와 우애의 경제학’(녹색평론 09년 1~2월호)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 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모모는 심오한 인생철학을 흥미있게 풀어놓은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는 동화이다.

< 토론주제 >
1. 나에게 인상적인 장면이나 내용을 서로 나눈다.

2. 그림을 그리듯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캐릭터의 특징을 묘사해 본다.

  모모 - 따뜻한 관심과 온 마음으로 반응하며 말을 들어주는 재주가 있는 여자 아이 
  베포 -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는 말없는 노인
  기기 -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말 잘하는 청년
  놀줄 모르는 아이들
  니콜라 - 장인에서 부속품으로 변하는 모습
  회색인간 -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

3. 회색신사의 세계 VS 모모의 세계를 가능한 구체적으로 대비시켜본다.

회색신사의 세계 - “지칠줄 모르고 무슨 일인가 열심히 하는”“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거지”
모모의 세계 - “수천년의 세월이 흐른 원형극장”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모가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 때문이었다.”“(모모를 만나려 오는) 그들 역시 가난하고,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4. 모모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간 VS 나의 시간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대비해본다.

“시간을 저축(절약)하여 불필요한 시간을 없애는 것은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것” 그런데 “시간을 절약할수록 윤택한 삶에서 멀어진다.”
“회색신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정적”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그냥 사라져버린다.”
“시간의 꽃”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묘사 (217쪽)

5. 거의 모든 사람이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사회에서 상실된 삶의 오래된 신비와 환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미하일 엔데는 우애의 경제학에서 국가와 법에는 평등, 문화와 정신에는 자유, 경제에는 우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는 신비와 환상, 생명존중과 휴머니즘이 뒤섞여 오래된 삶과 미래의 삶이 배합되어 있다.

2) 녹색평론 선집 1
창간사 -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김종철
시애틀 추장 연설 -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이대로 가면 세상이 곧 죽을 것이다, 앨런 이레이라
간디의 오두막, 이반 일리치
                  시의 마음과 생명공동체, 김종철

<녹색평론 선집 1>은 1991년 11월 창간호부터 통권 제6호까지 수록되었던 글 가운데 일부를 추려서 엮은 책이다. 그 중 앞 부분 글 몇 개를 함께 읽는다.  

< 토론주제 >

1. 산업기술 또는 백인문명 VS 인디언 또는 토착문명을 대비해 본다.

전자는 스스로를 문명, 후자를 미개인라고 부른다.
후자는 스스로를 형님, 전자를 아우라고 부른다.
전자에게 자연은 이용대상이고, 후자는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여긴다.
전자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후자는 협동과 상부상조를 중시한다.
전자는 땅을 사고, 팔고, 사유재산을 중시한다. 후자는 어머니 대지를 사고, 판다는 것, 신이 모두에게 주신 자연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전자는 스스로를 교육받은 자, 후자를 못 배운 자라고 부른다.
후자는 시적 감수성과 자연에서의 배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역사는 전자를 강자로, 후자를 약자로 그리고 있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시애틀 추장)

“편의물들을 우리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더 커진다.”“소유물의 증가는 창조성의 표현을 줄어들게 한다.”“간디의 오두막은 평범한 사람의 존엄성이 어떻게 고양될 수 있는가를 세상에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단순성과 봉사와 진실성을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반 일리치)

2. 앞의 대비를 가지고 우리사회 돌아보기.

ex) 과거의 교육과 현재의 교육
과거 교육의 목표 : 사람구실 하는 것, 내용 - 예의바른, 선한, 효도하는, 어울리고, 착하고, 부지런함
현재 교육의 목표 : 돈, 명예, 글로벌인재 (글로벌 인재도 지구촌 평화운동가, 환경운동가, 분쟁조정자 등등 보다는 글로벌하게 돈버는 사람)

그러다보니
아이가 착하면 부모가 걱정해요.

조금 손해보는 것도 못 참아,
인간관계는 적당히 냉소하고, 적당히 관계하고,
이래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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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기념사업회에서 시민교육 지침서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저도 필자로 참여하여 ‘대안적 삶’과 관련된 부분을 기술하기로 하였습니다. 블로거 여러분께서 아래 글과 목차를 참조하여 좋은 제안과 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채택된 글은 소정의 원고료 지급합니다.

대안(代案, Alternative)은 무엇일까? 
 
위키백과에서 대안(Alternative)를 입력하면 “컴퓨터 자판의 Alt 키, 대안학교(Alternative School), 대체에너지(Alternative Energy) 등”이 나온다.
Alt 키는 ‘alternative key’의 준말로 다른 누른 키의 기능을 대체하는 기능의 글쇠이며,  대안학교(代案學校, alternative school)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학습자 중심의 자율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만들어진 종래의 학교교육과는 다른 학교다.
대체에너지(alternative energy)는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 자원에 쓰이는 용어로 전통적이지 않으면서도 환경에 적은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즉 태양 에너지, 풍력 에너지, 바이오매스, 지열, 조력발전 등을 일컫는다.

한편 대안적 생활양식(alternative lifestyle)을 입력하면 “전통적인 삶과 일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생활양식”(alternative lifestyle does not follow conventional ways of living and working)이라고 나온다.

따라서 대안(Alternative)이란 기존의 것과 다르거나 대체하는 무엇을 일컫는 말로 그 자체로 명료한 가치체계나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대안을 놓고, 그것이 진정한 대안인지 아닌지, 대안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와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논쟁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대안(Alternative)은 사회와 개인에게 새로운, 열려있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수많은 탐색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가능성의 길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현재 대안적 사회와 대안적 삶에 대한 논의는 세계적, 국가적, 지역적, 개인적 수준의 다양한 층위에서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反)세계화운동 또는 대안세계화운동의 구호가 “Another world is possible”인 반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수였던 영국 마가릿 대처 수상은 “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주장하여 Tina 전체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현대판 맘몬으로 규정하고 사람과 자연의 관점에서 세계화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바람직한 경제와 무역, 금융, 세계질서를 창출하자는 ‘민중과 땅에게 말하는 대안적 세계화’(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s and earth) 줄여서 아가페(Agape)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실 대안(alternative), 대안적 생활양식(alternative lifestyle), 대안적 문화(alternative culture)는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환경운동이 성장일변도의 사회적 패러다임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시작하였다면 1997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의 구조와 생활양식 전반에 대한 반성적 질문이 확산되었고, 2000년대 중반부터 ‘지구온난화’로 상징되는 극적이고, 예측가능한 지구적 위기 앞에 우리 사회에서도 대안과 대안적 삶은 하나의 뚜렷한 경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경향신문은 2008년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창간특집을 기획하였다. 이 특집에는 생태마을 조성기업 에듀코빌리지, 시흥시 자활영농사업단 연두농장, 8년째 냉장고 없이 사는 국민대 윤호섭 교수, 대안생리대 운동을 하는 피자매 연대 등의 기사가 실려있다.
기자는 이들을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기에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며 “일상의 혁명가”라고 부르고 있다.

이 지침서는 지침서를 이용하는 시민 각자에게 대안(alternative)를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이 지침서는 우리 삶의 구조와 관계, 우리의 생활양식 전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위해 묻고, 토론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삶의 대안(alternative)을 스스로 정립하도록 자극하고, 돕는 안내서이다.

이 지침서를 개인보다는 소그룹으로 이용하기를 권한다. 소그룹으로 생각을 나눌 때 나를 넘어선 공명(共鳴)과 공감(共感)이 일어나고, 나만의 문제로 느끼던 많은 것들이 실상은 나를 넘어선 우리(같은 세대 또는 같은 시대)의 문제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개인은 사회적 인간이 되고, 문제더미에 짓눌린 무기력한 개인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동적인 주체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순 서

1. 현재의 삶과 대안적 삶
2. 행복? 행복! (행복에 대해 돌아보기) 
3.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
4. 지구온난화 시대, 지구에서 가볍게 살기
5. 단순 소박한 삶 (Simple Life)
6. 먹거리 위기와 먹거리 대안
7. 이웃과 더불어 살기
8. 지역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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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사가 돼도 되나?
최영란, 이매진 출판사

교육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뜨거운 교육열로 우리나라가 이만큼 먹고살만한 나라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칫 교육이 부를 대물림하고, 빈부격차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교육받을수록 바보로 만드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숨막힐듯한 입시교육의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여섯 곳을 다니고, 학습지 세 개 이상을 하는, 대한민국 교육열에 찌든 어린이였다.....입시교육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과정없이 살다가 나처럼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기 소질과 적성하고는 다른 길 위에서 맹목적으로 일류 대학을 희망하고, 그렇게 들어온 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요즘 내 주변에는 자기 꿈하고는 별개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공무원이 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생활이다......교육이 인생의 가치와 개인의 공유한 방향성을 찾아 그것을 개발하고 실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나 죽은 것 같은 무의미한 삶을 부추기고 있다.”    (본문 중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교육이 숨막히고, 앞이 안 보일수록 역설적으로 교육개혁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상황을 살아온 대학생들의 글이다.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그들이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글을 통해 우리 교육을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독특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류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도 모른채 청소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놓고 있는 모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 학생은 “지금까지 내가 겪은 최악의 수업도 미술, 최고의 수업도 미술인 것이 신기하다.”며 한국에서 보낸 중학시절과 뉴질랜드에서 보낸 고교시절을 비교한다.
이 학생은 중학교 미술 시간마다 미술을 못한다고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았는데 보다 못한 어머니가 미술학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비싸지도 않은데 괜히 아이 고생시켰네”라며 어느날 어머니가 학원에서 5만원 주고 사온 작품으로 수행평가를 치룬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다. 반면 뉴질랜드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년 동안 자신이 정한 주제로 사진을 200장 이상 찍고, 추상적인 유화, 아크릴화, 서예 등 별짓을 다하면 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만족감을 중학교 미술시간의 경험과 오버랩시킨다.

“가장 그리운 것은 수업에서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던 수많은 영감들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던 과정들이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개성있는 자아를 만들어갔다.”     (본문 중에서)

곧이어 이 학생은 이렇게 덧붙인다.
“한국 미술 선생님은 참 무미건조했다. 뉴질랜드 미술 선생님은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 등이 모두 녹아있는 수업을 했지만, 한국 선생님은 ‘미술을 가르치러 매주 금요일 3~4교시만 들어와서 그냥 훑고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나라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는 것보다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한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이들이 쓴 글의 제목만 봐도 우리 교육의 비참한 현주소를 알 수있다.

오답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다./ 나는 길을 잃었다./ 늘 전투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나는 개새끼다’를 외치고 난 뒤/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에 타다 남은 숯 검댕이다./ 방 한 바퀴를 돌리고도 남는 문제집, 그리고 천장까지 닿는 책/ 강박증 환자로 만든 한국의 교육열/ 내 생각과 의지가 없는 삶/ 한국에서는 낙제생, 뉴질랜드에서는 예술가/ 너무 수준 낮은 질문이라 답변할 가치가 없다?/ 나는 학교 부적응자다 

작은 공간, 그러나 희망의 틈새 - 잊지못할 선생님.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가? 우리교육의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우리 모두는 패배자에 불과한가?

다행히 이 책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이들이 잊지못하는 교사들이 있다.

한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점심시간에 요구르트와 귤을 한 봉지씩 사들고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다. 점심식사 후, 교장선생님은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 논어의 한구절 등 짧은 강의를 한 후 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 궁금한 것이나 고쳐줬으면 하는 사소한 의견을 귀기울여 들어준다.

“그렇게 교장 선생님과 만나는 경험은 횟수를 떠나 학교와 스승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울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문 중에서)

또 한 학생은 1등을 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와 만성피로에 시달리다 결국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상담선생님이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 같은데”라며 위로해주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치유된 경험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모를 것이다. 십년이 지났고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도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선생님이 보여주는 10만큼의 관심이 받아들이는 아이들한테는 놀랍게도 만 배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만난 새로운 자각
더욱 희망적인 것은 이들이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절절히 토해낸 후,
그 상처투성이의 아픔 뒤에 (소록히 새싹이 나듯이) 삶의 의미, 배움과 교육의 의미,
교사의 역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싹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이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사람을 다루는 교육 활동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인간의 본질과 존재를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과목이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사가 되는 길은 ‘내가 아닌 나’로 살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진행돼서는 안 된다. 삶을 견디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교사가 되는 길이어야 한다.”             (본문 중에서)

“부모가 되려면 라마즈 호흡법이나 요가, 분유 타는 법을 배울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와 가치관부터 정립해야 한다.....예전 부모님은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자식에게 윤리나 양심에 관한 교육은 기본적으로 시켰지만, 요즘 부모들은 기본적인 예의와 윤리보다는 자기 자식이 남보다 뛰어나고 앞서 나가기를 원하는 마음만 갖고 교육을 한다....부모들에게 교육과 책임의식을 심어주고 교육에 대한 올바른 생각부터 정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이 싹트듯이,
처절한 입시교육의 상처 속에서도 자기다움의 발견,
친구에 대한 관심과 팀워크를 통한 연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아름답게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과 불안, 두려움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철저히 분해하고 나면,
비로소 나의 인생, 나의 길, 나의 빛이 제대로 드러나고,
내가 나답게 사는 것 만큼이나 내 친구의 삶이 소중하고, 귀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만신창이의 교육현장에서 혼신을 다해 각자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저자인 최영란 교수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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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mdaihage 2010.04.0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영란교수님의 조용하면서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릅니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고민하지 않고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교사도 부패하기 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 많은 교사들이 부패해간다해도 교수님과 같은 분이 계시고 또 그 뜻을 함께 나누는 제자들이 있어서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 틈에 살짝 끼고 싶네요^^

    • 다른 목소리 2010.04.05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모두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는 살짝 끼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요~~ㅋㅋ 함튼 중심이든 옆 자리든 의미있는 삶의 굴레에 함께 함이 중요하죠.

또 다른 김예슬을 위해
추락을 경험하지 못한 자, 비상을 알지 못하니


일상에 바쁜 나는 김예슬 님의 글을 뒤늦게 만났다. 인터넷 공간에서 <대학을 거부한 고대생>이라는 문구를 만나고 여러가지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정작 그녀의 글을 직접 읽은 것은 며칠 안된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누군지도, 그녀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 글에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리고 <창비논평>을 통해 소설가 김사과 님의 글을 읽었다. 
그 글의 진지함과 솔직함에 마음이 끌리지만 몇가지 문구는 나에게 걸린다. 
첫 번째는 탈학교 아이들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안학교는 중산층 부모의 값비싼 옵션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타인의 삶이 놓인 중요한 문제를 누구와 논쟁할 생각은 없다. 다만 김예슬 님과 김사과 님의 글을 매개로 내 생각을 나누고 싶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버리는 것
 탈학교 아이들 다수가 대학으로 돌아갔으니 탈학교 운동이 실패했다는 말은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실패니 성공이니 하는 것을 너무 가르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삶의 자유로움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나는 실패나 성공을 떠나 그 근저에 놓여있는 우리의 존재방식과 대면하고 싶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정한 삶의 순간, 배움과 선택의 순간, 정말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세상과 온몸으로 대면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우리는 인생에 그렇게 임하고 있는가?
아니 그렇게 임한 순간이 있기나 한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런 순간에 작동하는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류대학, 경제적 안정성, 사회적 지위....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다 중요한 일이다.
일류대학을 나오고, 좋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면 그 사회적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하지만 정말 그것을 다 선택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은 정말 중요한 선택을 회피하도록 하는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 인생은 짧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저런 좋은 것을 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사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한 순간은, 바로 무언가를 버린 순간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도 많은 순간, 내일을 위해 오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버리며 산다. 사랑, 우애, 지지, 격려,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 이웃과 따뜻하게 나누며 사는 것......내일을 위해 우리가 버리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것을 버리면 안될까?

김예슬 님이 언젠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적극적인 선택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실패해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당하게,
인생을 건 선택, 모험에 가득한 선택, 앞을 모르는 선택.

나는 사회에서 정해진, 사회에서 강요하는 길을 벗어나 어떤 선택을 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김예슬 님과 함께 울고, 웃고 싶다.

주류문화를 벗어난 불안과 흔들림, 그 너머에 있는 것
우리 아이들(중 2, 초등 6)은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에 다닌다. (나는 가까운 곳에 대안학교가 생기지 않았다면 대안학교를 찾아 일부러 먼 곳까지 아이들을 보내기 보다는 일반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볍씨학교 학부모들은 정말 다 평범한 사람들이다.(중산층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경쟁중심, 학습중심의 일반학교가 싫어서 대안학교를 선택했지만 항상 불안하고, 흔들린다.
주류문화에서 벗어난다는 것,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이번 호에는 대안학교 출신 청소년 여러 명의 글이 실렸다.
그 글의 흔들림, 그 글의 방황....그 아이들은 다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소위 일류대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도 있고,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아이도 있다. 무엇이 옳고 틀리겠는가? 그 불안감 속에서 자기인생을 살아가는 힘, 그 진지한 고뇌가 가장 풍요로운 인생의 자양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고뇌의 힘을 잃어버렸다.
스펙에만 매달리고, 박스 안에서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
그래서 다 허기지고, 거칠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그래서 느끼는 충만함을 상실하면, 권력욕과 물욕으로 그 허기짐을 채우려한다.
소위 일류대를 나오고, 높은 자리에 있지만 증오심으로 가득한 사람들,
내가 아니라 너 때문에, 좌파 때문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오직 밟고, 밟히는 서열적 경쟁만이 그들의 인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도 불쌍하다. 가진 것은 많지만 영혼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영혼은 진실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 스스로가 진실로 답하지 않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점차 메말라간다.
오래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그들의 침실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전쟁 대신 사랑을”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잘나고 못나고,
성적에 따라 일렬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따뜻한 손길과 격려의 눈빛이다.

김예슬 님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고대 경영학과 다니던 잘난 사람이니까 일으키는 파문이라고 냉소하지 말자.
대안학교 다니는 청소년들의 흔들림에도 좋은 부모 만나서 살만하니까 하는 치기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자.
누구도 답을 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에 함께 아파하자. 

그래서 그들이 사람을 짓밟고 사는, 이 치졸한 세상 너머에서
용기있고 당당하게,
가난해도 떳떳하게,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살아가도록 기도하자.

추락을 경험하지 못한 자 비상을 알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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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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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mdaihage 2010.03.26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스를 통해 김예슬양의 용기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자보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20년전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많은 대학생들이 하던 고민, 바로 그것이었으며 더 나아질 것도 없이 더 막막한 현실만 남아있는 대학의 모습이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내가 왜 이곳에와 있는지, 무엇을 위해 공부해왔는지를 고민하는 많은 대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끊이지 않는 경쟁의 테두리안에서 사람다운 모습들을 잃어가는 이땅의 학생들이 대체 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김예슬양처럼 자신에게 부딪친 이런 고민들을 세상에 꺼내놓고 현실이 바라는 길이 아닌 자신이 바라는 길로 인생의 키를 전환한 용기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 다른 목소리 2010.03.27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예슬 양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젊은 시절, 낭떠러지 끝에 서있던 느낌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더 관심갖는 것은 '그 선택의 순간''선택의 힘'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형성될까요? 김예슬 양 같은 극적인 선택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들 모두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살지요. 그럴 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진정성과 자기다움 보다는 주어진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요. 조금 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려면 불안해지지요. 그래서 자기답기 보다는 진정한 삶과 직면하기 보다는 그냥 모나지 않게 주어진 길을 (어쩔 수 없이) 걸어가지요. 그것이 삶일까? 아니면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