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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승)의 길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기 2장 7절)

그런데 왜 일까?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의식이 형성되는 그 날부터
우리는 하늘과 연결된 생명의 기운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망각의 존재는 다른 망각의 존재와 부딪히며
상처주고, 상처받는다.
“동물의 세계를 봐라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하는 피상적인 관찰의 강요가
당연한 진리가 되어
너와 나를 경쟁으로 내몬다.
망각은 더 큰 망각을 불러오는지
그는 스스로 자기만의 구렁텅이에 걸어 들어가
외롭게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당초, 너와 나는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속에
생명의 씨앗으로, 생명의 줄기로
서로서로 기대어
따뜻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너와 나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인 것을,

생명의 기운은 신께서 주시고
망각은 우리 스스로 만들었으니
망각에서 깨어남
그것이 교육이고, 배움이다.

망각이 깨지는 날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너와 나는 벗으로, 연인으로, 길동무로
따뜻하게 맺어지려니

망각을 일깨워주는 이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주는 이 
본래 그 자리에, 늘 있었던
생명의 기운을 되살리게 하는 이
그가 교사다. 스승이다. 

- 지난 10월 16일(토) 개최된 YMCA아기스포츠단 배움지기 모임 주제가 스승, 교사에 대해 글쓰고, 나누기였습니다.그 준비를 하면서 쓴 글입니다. 함께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은 오묘한 섭리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 사진은 올해 초 제주도 섭지코지에서 찍은 등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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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mdaihage 2010.11.24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와 맺은 첫 인연이 제겐 YMCA였지요.
    아마도 다른곳과 인연을 맺었다면 망각하고 살았을 너무나 많은 일들을 깨우쳐준 곳이 YMCA입니다.
    맑고 밝은 심성의 아이들을 만나게 해준 곳, 환경과 먹을거리,사회에 관심을 갖게 해준 곳, 내가 아닌 우리를 깨닫게 해준 곳, 일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곳. 그래서 YMCA는 내게 큰 스승입니다.

  2. feed hammermill 2011.11.03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졸업식 하던 날 마지막 영상에 총무님 글이 올라오는데 눈물이 어찌나 나던지...
    16년 넘게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세상 가장 반짝이는 빛으로 온 아이들을 그 빛을 더 밝혀주지 못하고 교사라는 이름으로 빛을 잃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 총무님처럼 좋은 글로 축복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잃었던 빛 다시 찾고 건강하게 잘 살아갈 거라고 믿어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3. christin 2012.03.21 0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무 지조냐싶 일단전를끊었던것 나와통한내용이었다.

  4. mirc 2012.07.25 2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억을 남겨주세요

빨간 미니스커트, 기다림, 김결 이야기


< 문수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제에 참여한 후 식당에서 >

김결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하지만 생일이 12월 28일이니까 어린 6학년이죠.

헉, 빨간 미니스커트!
결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와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제 속에 저와 많이 닮은 큰 얘를 편애하는 마음이 있었고, (말은 안해도) 결이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이는 아빠를 어려워하고, 아빠와 얘기할 때도 긴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결이가 6살 때 제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빨간 초(?) 미니스커트를 입은 결이가 "아빠"하고 달려왔습니다.
저는 눈에 거슬려 "안 예쁘다. 벗어라"하고 제 방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결이가 너무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에서 씼고 나오는 저에게 어머님이 "(어디서 얻은 옷인데) 결이가 아기스포츠단 갔다 오자마자 입고 나간다고 해서 너무 짧으니까 집에서만 입기로 했는데 너는 아이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냐?"며 말씀하셨습니다. 

한쪽에서 계속 울고있는 결이를 보며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빠는 아빠고, 아이는 아이인데, 아이가 내 맘에 안든다고, 아이가 내 틀에 안 맞는다고, 아빠는 수더분한 것을 좋아하는데 아이가 튄다고 마음에 안들어 하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아이의 특성을 특성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이도 그것을 느꼈는지 한 1년 지난 다음부터 관계가 많이 편해지고, 아빠도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둘, 그런데 전혀 달라!!
아이가 둘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큰 얘는 언어와 수를 아주 일찍 스스로 깨쳤습니다. 그런데 결이는 말하기가 아주 늦더니 2학년까지 쓰기를 못했습니다. 
부모 마음은 조급하지만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아이 말을 많이 들어주고, 시간이 되면 동화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가족과 친구의 기념일에는 편지대신 그림카드를 보내고, 시간만 되면 그림을 그립니다. 

부모 마음이 다 똑같아 속앓이도 했지만 5학년 때부터 동화책 읽기에 재미가 붙더니 지난 겨울방학 때는 (어렸을 때 책에 붙어살던 큰 얘는 심드렁한데) 매주 도서관에서 3~4권의 책을 빌려서 읽습니다. 

6학년이 되더니 어휘력도 많이 늘어 오빠와 말싸움에도 밀리지 않아 오빠 눈이 휘둥그레지곤 합니다. 

기다림의 미학, 제 때의 이치
결이를 보면서 조금 앞선다고, 조금 뒤진다고 일희일비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새삼 느낍니다. 
아직은 수학을 힘들어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풀지못하기 보다는 지레 질려서 안 풀거나 못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배움은 스스로의 힘을 길러가는 것인데 어른들은 그것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에 연연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참된 배움의 기회를 가로막고, 지연시킵니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더욱 기다림의 미덕을, 기다림의 참 의미를 알게해 준 결이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 애니어그램 수련 끝나고 결이가 책상 앞에 붙여놓은 글 - 글도 그림같고 결이가 쓴 글에는 항상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생깁니다. (애니어그램을 아시는 분은 아빠와의 관계가 어려웠는데 왜 6번일까 생각하실텐데 저보다는 할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P.S. 결이는 친할머니를 많이 닮았습니다. 여고 졸업하자마자 3대 독자였던 오빠의 손을 잡고 월남했던 어머님은 손재주가 좋으셨는데 "전쟁만 없었으면 미대에 갔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신비로운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결이가 "할머니 돌아가셨어요?"해서 왜 그러냐니까 "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니 정말 그날 오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영적 관계맺음은 우리가 경험하는 시공간을 넘어 우주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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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지윤 2010.06.17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이 얘기군요~~~^^*
    결이는.. 그림을 진짜 너무 잘그려요~ 할머니를 닮은거 같아요..
    글잘읽고 가요~^^

고맙다. 회초리


체벌과 관련된 교육적 이론은 상반된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없다. 폭력만이 있을 뿐이다.”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자기 중심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느니 체벌을 해서라도 올바른 습관과 버릇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교육적으로 어느 이론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체벌을 안하는 부모가 꼭 좋은 부모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아이들이 다섯 살 무렵부터 체벌과 관련된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충분한 대화가 가능한 연령이 되기 전까지(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3학년까지로 정했다.) 꼭 필요한 경우 회초리를 사용한다.

둘째, 부모의 감정으로 회초리를 들지않고, 교육적인 경우에 한한다.

셋째, 감정이 겪하다고 손이나 발을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회초리를 사용한다.(아무리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감정으로 손이 올라가 몸과 몸이 폭력적으로 부딪힌 경우 아이는 큰 수치심을 느끼고 부모 역시 안좋은 감정이 오래남는 것 같다.)

넷째, 회초리를 사용할 경우 아이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설명한 후 잘못에 상응하는 정도의 체벌을 가한다.

다섯째, 체벌을 가한 후 아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벌을 받았을뿐 자신이 부정되고, 거부당한 느낌은 들지않도록 잠자리에 들기 전 마음을 풀어준다.  

(처음부터 이런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회초리를 보자기로 싸고, 끈으로 묶어 놓았다.

뒤돌아봐도 이것은 참 잘한 일인데
부모입장에서는 체벌을 할 이유가 있어도 끈과 보자기를 풀면서 겪한 감정은 정리된다.
그러면 좀더 냉정하게 교육적인 측면에서 아이와 대화하고 (아주 드물게) 체벌할 수가 있다.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회초리를 꺼내고 끈을 푸는 순간 긴장은 고조되고, 대부분의 경우 잘못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초등학교 2학년까지 (회초리를 꺼낸 경우는 일년에 한번 정도 되지만) 실제로 체벌로 연결된 경우는 김산 2차례, 김결 1차례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초등학교 6학년인 김결이 아빠에게 수학문제 풀이를 도와달라고 하더니....
아빠가 하는 말이 맘이 상했는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갑자기 격하게 울기 시작한다. (조금 그대로 놔두었더니) 문제풀이집을 휙 던지더니 자기 방으로 가서 또 울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조금 있다 해도 좋으니 어쨌든 약속한 곳까지는 하라고 했더니 자기는 안하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이 때 (아빠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김결을 거실로 불러들인 후 회초리를 가져온다.
회초리 끈을 푸는 과정에서 아빠 감정 조금 식고, 김결 말하기 시작하고....(시간이 조금 지난 후) 김결 수학을 다시 시작한다.

아이는 금방 헤헤 거리며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어른들은 오래 남죠. 그래서 아이와 싸워봤자 어른만 손해입니다.
그런데 저....끈으로 묶어놓지 않았으면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서) 체벌할 뻔 했어요.
때려서 무슨 문제가 해결되겠어요. 서로 마음만 상하고, 관계만 멀어지지...
하지만 회초리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드네요.
(작년에 버리려고 했는데 안버리기를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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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pra 2013.04.21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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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0대 좌우명


1. 사람은 모두 존중해야 한다.
-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2. 음악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 나에게 음악은 휴식처이며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주는 음파이다.


3. 내 주위 사람들은 나의 일부분이다.

- 내 주위 사람들을 나의 하나처럼 대하고,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다.

4. 질보다 양이다.
- 말 그대로이다.

5. 차도를 까느니 자전거 도로를 깔고, 자전거 도로를 까느니 자연을 깔아라.
- 개발 Stop! 자연을 살립시다.

6. 김치찌게에 고기가 빠지면 그건 그냥 김치 쫄인 물이다.
- 엑스트라가 없는 영화는 없다.

7. 바닷가는 쓰레기통이 아니야 이것들아.
- 쓰레기 좀 그만 버려라.

8. 받은 만큼 주어야 한다.
- 말 그대로

9. 웃음이 없는 세상은 쓰레기 처리장.
-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한 때다.

10. 혼자 있을 때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여럿이 있을 때에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현재 15살(중 2)인 산이가 14살 겨울에 쓴 글로 본인의 동의 하에 올렸습니다.

6번 김치찌게 이야기는 채식 위주 식단을 하는 엄마에 항거하는 목소리인데 이 글을 본 이후 김치찌게할 때 고기를 넣더군요.^^  제가 감탄한 것은 10번인데 산이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생각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어요.

그러나.....요즘은 사춘기라 말만하면 부정적이고, 부모 노릇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보석같이 아름다운 본질을 (나름대로) 정제하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긴 호흡으로) 이 시간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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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햇볕 2010.04.09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는 작년에 비하면 평화롭지요~ 산이의 표정이 편안해 진 것 느끼지 않으세요?
    어제 김기원선생님과 이야기 나누었는데 학교에서도 자유로움
    그 자체라고 하던데....
    하여간 김산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2. 이윤기 2010.04.09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혼자 있을 때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하고...여럿이 있을 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한 수 배웠습니다.

    • 다른 목소리 2010.04.09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Y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언젠가 볍씨학교에 갔더니 어떤 아이가 "말못한다고 동식물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다." 이렇게 썼더라구요.

  3. 정건희 2010.04.16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사춘기라 말만하면 부정적이고, 부모 노릇하기 힘들다"는 김총장님 말씀 많이 공감합니다.
    그래도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춘기의 부정적인 말이... 아이들이 독립하려는 모습의 시작이라 생각해서요.
    10대가 되면서 작은 저항들이 일어나는데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매우 기본적인 일들이거든요.
    나중 산이는 멋진 청년이 될 것 같아요.
    "혼자 있을 때는 깊은 생각을 여럿이 있을 때는 새로운 생각을..."
    생각이 깊은 아이 같아요.
    총장님께서...아이를 잘 키운 것 같습니다.

    • 다른 목소리 2010.04.16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청소년운동 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요.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큰 시기인데...그것을 잘 받아주고, 자기 무늬대로 살도록 해야하는데...어른들은 알면서도 힘들어요. 그래서 청소년운동하는 분들 대단합니다.

  4. 함께 평화 2010.04.17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10대 좌우명이네요. 아이가 사춘기라 하여도 그래도 잘 성장하리라 봅니다. 나중에 사춘기 극복기 좀 알려주세요. 우리 아들래미는 이제6학년인데..지금 봐서는 사춘기 안올것 같기도 하고...^^

    • 다른 목소리 2010.04.18 1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저도 그런 착각이 있었습니다.근데 6학년 초에 한번 오더니...조금 나지고, 중 1말부터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뭐든지 좀 삐딱하게 보고, 귀찮아하고....진지하게 물어보면 자기도 왜 인지 모르겠데요. 그 말이 맞겠지요. 아, 질풍노도의 시기.

내가 교사가 돼도 되나?
최영란, 이매진 출판사

교육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뜨거운 교육열로 우리나라가 이만큼 먹고살만한 나라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칫 교육이 부를 대물림하고, 빈부격차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교육받을수록 바보로 만드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숨막힐듯한 입시교육의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여섯 곳을 다니고, 학습지 세 개 이상을 하는, 대한민국 교육열에 찌든 어린이였다.....입시교육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과정없이 살다가 나처럼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기 소질과 적성하고는 다른 길 위에서 맹목적으로 일류 대학을 희망하고, 그렇게 들어온 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요즘 내 주변에는 자기 꿈하고는 별개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공무원이 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생활이다......교육이 인생의 가치와 개인의 공유한 방향성을 찾아 그것을 개발하고 실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나 죽은 것 같은 무의미한 삶을 부추기고 있다.”    (본문 중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교육이 숨막히고, 앞이 안 보일수록 역설적으로 교육개혁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상황을 살아온 대학생들의 글이다.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그들이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글을 통해 우리 교육을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독특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류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도 모른채 청소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놓고 있는 모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 학생은 “지금까지 내가 겪은 최악의 수업도 미술, 최고의 수업도 미술인 것이 신기하다.”며 한국에서 보낸 중학시절과 뉴질랜드에서 보낸 고교시절을 비교한다.
이 학생은 중학교 미술 시간마다 미술을 못한다고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았는데 보다 못한 어머니가 미술학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비싸지도 않은데 괜히 아이 고생시켰네”라며 어느날 어머니가 학원에서 5만원 주고 사온 작품으로 수행평가를 치룬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다. 반면 뉴질랜드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년 동안 자신이 정한 주제로 사진을 200장 이상 찍고, 추상적인 유화, 아크릴화, 서예 등 별짓을 다하면 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만족감을 중학교 미술시간의 경험과 오버랩시킨다.

“가장 그리운 것은 수업에서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던 수많은 영감들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던 과정들이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개성있는 자아를 만들어갔다.”     (본문 중에서)

곧이어 이 학생은 이렇게 덧붙인다.
“한국 미술 선생님은 참 무미건조했다. 뉴질랜드 미술 선생님은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 등이 모두 녹아있는 수업을 했지만, 한국 선생님은 ‘미술을 가르치러 매주 금요일 3~4교시만 들어와서 그냥 훑고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나라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는 것보다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한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이들이 쓴 글의 제목만 봐도 우리 교육의 비참한 현주소를 알 수있다.

오답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다./ 나는 길을 잃었다./ 늘 전투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나는 개새끼다’를 외치고 난 뒤/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에 타다 남은 숯 검댕이다./ 방 한 바퀴를 돌리고도 남는 문제집, 그리고 천장까지 닿는 책/ 강박증 환자로 만든 한국의 교육열/ 내 생각과 의지가 없는 삶/ 한국에서는 낙제생, 뉴질랜드에서는 예술가/ 너무 수준 낮은 질문이라 답변할 가치가 없다?/ 나는 학교 부적응자다 

작은 공간, 그러나 희망의 틈새 - 잊지못할 선생님.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가? 우리교육의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우리 모두는 패배자에 불과한가?

다행히 이 책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이들이 잊지못하는 교사들이 있다.

한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점심시간에 요구르트와 귤을 한 봉지씩 사들고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다. 점심식사 후, 교장선생님은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 논어의 한구절 등 짧은 강의를 한 후 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 궁금한 것이나 고쳐줬으면 하는 사소한 의견을 귀기울여 들어준다.

“그렇게 교장 선생님과 만나는 경험은 횟수를 떠나 학교와 스승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울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문 중에서)

또 한 학생은 1등을 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와 만성피로에 시달리다 결국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상담선생님이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 같은데”라며 위로해주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치유된 경험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모를 것이다. 십년이 지났고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도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선생님이 보여주는 10만큼의 관심이 받아들이는 아이들한테는 놀랍게도 만 배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만난 새로운 자각
더욱 희망적인 것은 이들이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절절히 토해낸 후,
그 상처투성이의 아픔 뒤에 (소록히 새싹이 나듯이) 삶의 의미, 배움과 교육의 의미,
교사의 역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싹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이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사람을 다루는 교육 활동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인간의 본질과 존재를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과목이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사가 되는 길은 ‘내가 아닌 나’로 살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진행돼서는 안 된다. 삶을 견디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교사가 되는 길이어야 한다.”             (본문 중에서)

“부모가 되려면 라마즈 호흡법이나 요가, 분유 타는 법을 배울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와 가치관부터 정립해야 한다.....예전 부모님은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자식에게 윤리나 양심에 관한 교육은 기본적으로 시켰지만, 요즘 부모들은 기본적인 예의와 윤리보다는 자기 자식이 남보다 뛰어나고 앞서 나가기를 원하는 마음만 갖고 교육을 한다....부모들에게 교육과 책임의식을 심어주고 교육에 대한 올바른 생각부터 정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이 싹트듯이,
처절한 입시교육의 상처 속에서도 자기다움의 발견,
친구에 대한 관심과 팀워크를 통한 연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아름답게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과 불안, 두려움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철저히 분해하고 나면,
비로소 나의 인생, 나의 길, 나의 빛이 제대로 드러나고,
내가 나답게 사는 것 만큼이나 내 친구의 삶이 소중하고, 귀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만신창이의 교육현장에서 혼신을 다해 각자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저자인 최영란 교수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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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mdaihage 2010.04.0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영란교수님의 조용하면서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릅니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고민하지 않고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교사도 부패하기 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 많은 교사들이 부패해간다해도 교수님과 같은 분이 계시고 또 그 뜻을 함께 나누는 제자들이 있어서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 틈에 살짝 끼고 싶네요^^

    • 다른 목소리 2010.04.05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모두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는 살짝 끼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요~~ㅋㅋ 함튼 중심이든 옆 자리든 의미있는 삶의 굴레에 함께 함이 중요하죠.

또 다른 김예슬을 위해
추락을 경험하지 못한 자, 비상을 알지 못하니


일상에 바쁜 나는 김예슬 님의 글을 뒤늦게 만났다. 인터넷 공간에서 <대학을 거부한 고대생>이라는 문구를 만나고 여러가지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정작 그녀의 글을 직접 읽은 것은 며칠 안된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누군지도, 그녀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 글에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리고 <창비논평>을 통해 소설가 김사과 님의 글을 읽었다. 
그 글의 진지함과 솔직함에 마음이 끌리지만 몇가지 문구는 나에게 걸린다. 
첫 번째는 탈학교 아이들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안학교는 중산층 부모의 값비싼 옵션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타인의 삶이 놓인 중요한 문제를 누구와 논쟁할 생각은 없다. 다만 김예슬 님과 김사과 님의 글을 매개로 내 생각을 나누고 싶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버리는 것
 탈학교 아이들 다수가 대학으로 돌아갔으니 탈학교 운동이 실패했다는 말은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실패니 성공이니 하는 것을 너무 가르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삶의 자유로움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나는 실패나 성공을 떠나 그 근저에 놓여있는 우리의 존재방식과 대면하고 싶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정한 삶의 순간, 배움과 선택의 순간, 정말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세상과 온몸으로 대면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우리는 인생에 그렇게 임하고 있는가?
아니 그렇게 임한 순간이 있기나 한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런 순간에 작동하는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류대학, 경제적 안정성, 사회적 지위....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다 중요한 일이다.
일류대학을 나오고, 좋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면 그 사회적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하지만 정말 그것을 다 선택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은 정말 중요한 선택을 회피하도록 하는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 인생은 짧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저런 좋은 것을 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사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한 순간은, 바로 무언가를 버린 순간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도 많은 순간, 내일을 위해 오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버리며 산다. 사랑, 우애, 지지, 격려,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 이웃과 따뜻하게 나누며 사는 것......내일을 위해 우리가 버리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것을 버리면 안될까?

김예슬 님이 언젠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적극적인 선택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실패해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당하게,
인생을 건 선택, 모험에 가득한 선택, 앞을 모르는 선택.

나는 사회에서 정해진, 사회에서 강요하는 길을 벗어나 어떤 선택을 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김예슬 님과 함께 울고, 웃고 싶다.

주류문화를 벗어난 불안과 흔들림, 그 너머에 있는 것
우리 아이들(중 2, 초등 6)은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에 다닌다. (나는 가까운 곳에 대안학교가 생기지 않았다면 대안학교를 찾아 일부러 먼 곳까지 아이들을 보내기 보다는 일반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볍씨학교 학부모들은 정말 다 평범한 사람들이다.(중산층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경쟁중심, 학습중심의 일반학교가 싫어서 대안학교를 선택했지만 항상 불안하고, 흔들린다.
주류문화에서 벗어난다는 것,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이번 호에는 대안학교 출신 청소년 여러 명의 글이 실렸다.
그 글의 흔들림, 그 글의 방황....그 아이들은 다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소위 일류대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도 있고,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아이도 있다. 무엇이 옳고 틀리겠는가? 그 불안감 속에서 자기인생을 살아가는 힘, 그 진지한 고뇌가 가장 풍요로운 인생의 자양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고뇌의 힘을 잃어버렸다.
스펙에만 매달리고, 박스 안에서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
그래서 다 허기지고, 거칠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그래서 느끼는 충만함을 상실하면, 권력욕과 물욕으로 그 허기짐을 채우려한다.
소위 일류대를 나오고, 높은 자리에 있지만 증오심으로 가득한 사람들,
내가 아니라 너 때문에, 좌파 때문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오직 밟고, 밟히는 서열적 경쟁만이 그들의 인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도 불쌍하다. 가진 것은 많지만 영혼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영혼은 진실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 스스로가 진실로 답하지 않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점차 메말라간다.
오래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그들의 침실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전쟁 대신 사랑을”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잘나고 못나고,
성적에 따라 일렬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따뜻한 손길과 격려의 눈빛이다.

김예슬 님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고대 경영학과 다니던 잘난 사람이니까 일으키는 파문이라고 냉소하지 말자.
대안학교 다니는 청소년들의 흔들림에도 좋은 부모 만나서 살만하니까 하는 치기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자.
누구도 답을 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에 함께 아파하자. 

그래서 그들이 사람을 짓밟고 사는, 이 치졸한 세상 너머에서
용기있고 당당하게,
가난해도 떳떳하게,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살아가도록 기도하자.

추락을 경험하지 못한 자 비상을 알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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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mdaihage 2010.03.26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스를 통해 김예슬양의 용기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자보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20년전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많은 대학생들이 하던 고민, 바로 그것이었으며 더 나아질 것도 없이 더 막막한 현실만 남아있는 대학의 모습이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내가 왜 이곳에와 있는지, 무엇을 위해 공부해왔는지를 고민하는 많은 대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끊이지 않는 경쟁의 테두리안에서 사람다운 모습들을 잃어가는 이땅의 학생들이 대체 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김예슬양처럼 자신에게 부딪친 이런 고민들을 세상에 꺼내놓고 현실이 바라는 길이 아닌 자신이 바라는 길로 인생의 키를 전환한 용기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 다른 목소리 2010.03.27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예슬 양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젊은 시절, 낭떠러지 끝에 서있던 느낌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더 관심갖는 것은 '그 선택의 순간''선택의 힘'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형성될까요? 김예슬 양 같은 극적인 선택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들 모두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살지요. 그럴 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진정성과 자기다움 보다는 주어진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요. 조금 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려면 불안해지지요. 그래서 자기답기 보다는 진정한 삶과 직면하기 보다는 그냥 모나지 않게 주어진 길을 (어쩔 수 없이) 걸어가지요. 그것이 삶일까? 아니면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