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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만신창이 교육에 치료제 한방

내가 교사가 돼도 되나?
최영란, 이매진 출판사

교육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뜨거운 교육열로 우리나라가 이만큼 먹고살만한 나라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칫 교육이 부를 대물림하고, 빈부격차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교육받을수록 바보로 만드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숨막힐듯한 입시교육의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여섯 곳을 다니고, 학습지 세 개 이상을 하는, 대한민국 교육열에 찌든 어린이였다.....입시교육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과정없이 살다가 나처럼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기 소질과 적성하고는 다른 길 위에서 맹목적으로 일류 대학을 희망하고, 그렇게 들어온 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요즘 내 주변에는 자기 꿈하고는 별개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공무원이 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생활이다......교육이 인생의 가치와 개인의 공유한 방향성을 찾아 그것을 개발하고 실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나 죽은 것 같은 무의미한 삶을 부추기고 있다.”    (본문 중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교육이 숨막히고, 앞이 안 보일수록 역설적으로 교육개혁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상황을 살아온 대학생들의 글이다.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그들이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글을 통해 우리 교육을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독특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류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도 모른채 청소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놓고 있는 모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 학생은 “지금까지 내가 겪은 최악의 수업도 미술, 최고의 수업도 미술인 것이 신기하다.”며 한국에서 보낸 중학시절과 뉴질랜드에서 보낸 고교시절을 비교한다.
이 학생은 중학교 미술 시간마다 미술을 못한다고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았는데 보다 못한 어머니가 미술학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비싸지도 않은데 괜히 아이 고생시켰네”라며 어느날 어머니가 학원에서 5만원 주고 사온 작품으로 수행평가를 치룬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다. 반면 뉴질랜드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년 동안 자신이 정한 주제로 사진을 200장 이상 찍고, 추상적인 유화, 아크릴화, 서예 등 별짓을 다하면 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만족감을 중학교 미술시간의 경험과 오버랩시킨다.

“가장 그리운 것은 수업에서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던 수많은 영감들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던 과정들이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개성있는 자아를 만들어갔다.”     (본문 중에서)

곧이어 이 학생은 이렇게 덧붙인다.
“한국 미술 선생님은 참 무미건조했다. 뉴질랜드 미술 선생님은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 등이 모두 녹아있는 수업을 했지만, 한국 선생님은 ‘미술을 가르치러 매주 금요일 3~4교시만 들어와서 그냥 훑고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나라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는 것보다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한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이들이 쓴 글의 제목만 봐도 우리 교육의 비참한 현주소를 알 수있다.

오답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다./ 나는 길을 잃었다./ 늘 전투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나는 개새끼다’를 외치고 난 뒤/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에 타다 남은 숯 검댕이다./ 방 한 바퀴를 돌리고도 남는 문제집, 그리고 천장까지 닿는 책/ 강박증 환자로 만든 한국의 교육열/ 내 생각과 의지가 없는 삶/ 한국에서는 낙제생, 뉴질랜드에서는 예술가/ 너무 수준 낮은 질문이라 답변할 가치가 없다?/ 나는 학교 부적응자다 

작은 공간, 그러나 희망의 틈새 - 잊지못할 선생님.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가? 우리교육의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우리 모두는 패배자에 불과한가?

다행히 이 책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이들이 잊지못하는 교사들이 있다.

한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점심시간에 요구르트와 귤을 한 봉지씩 사들고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다. 점심식사 후, 교장선생님은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 논어의 한구절 등 짧은 강의를 한 후 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 궁금한 것이나 고쳐줬으면 하는 사소한 의견을 귀기울여 들어준다.

“그렇게 교장 선생님과 만나는 경험은 횟수를 떠나 학교와 스승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울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문 중에서)

또 한 학생은 1등을 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와 만성피로에 시달리다 결국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상담선생님이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 같은데”라며 위로해주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치유된 경험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모를 것이다. 십년이 지났고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도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선생님이 보여주는 10만큼의 관심이 받아들이는 아이들한테는 놀랍게도 만 배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만난 새로운 자각
더욱 희망적인 것은 이들이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절절히 토해낸 후,
그 상처투성이의 아픔 뒤에 (소록히 새싹이 나듯이) 삶의 의미, 배움과 교육의 의미,
교사의 역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싹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이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사람을 다루는 교육 활동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인간의 본질과 존재를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과목이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사가 되는 길은 ‘내가 아닌 나’로 살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진행돼서는 안 된다. 삶을 견디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교사가 되는 길이어야 한다.”             (본문 중에서)

“부모가 되려면 라마즈 호흡법이나 요가, 분유 타는 법을 배울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와 가치관부터 정립해야 한다.....예전 부모님은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자식에게 윤리나 양심에 관한 교육은 기본적으로 시켰지만, 요즘 부모들은 기본적인 예의와 윤리보다는 자기 자식이 남보다 뛰어나고 앞서 나가기를 원하는 마음만 갖고 교육을 한다....부모들에게 교육과 책임의식을 심어주고 교육에 대한 올바른 생각부터 정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이 싹트듯이,
처절한 입시교육의 상처 속에서도 자기다움의 발견,
친구에 대한 관심과 팀워크를 통한 연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아름답게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절망과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과 불안, 두려움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철저히 분해하고 나면,
비로소 나의 인생, 나의 길, 나의 빛이 제대로 드러나고,
내가 나답게 사는 것 만큼이나 내 친구의 삶이 소중하고, 귀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만신창이의 교육현장에서 혼신을 다해 각자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저자인 최영란 교수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