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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고향의 냇갈(4대강 공사중단을 촉구하며)

이 글은 4대강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부천지역 30일 릴레이 단식농성 7일째에 참여하신 박종훈 부천YMCA 증경이사장님의 글입니다. 많이 공유해주세요.


고향의 ‘냇갈’

박종훈 (부천YMCA 증경이사장, 삼화한의원 원장)

제 고향은 충남 천안시 풍세면 두남리.
천안과 온양, 호두로 유명한 광덕으로 둘러싸인 ‘풍세들’ 환촌의 한 구석에 있습니다.
저의 동네는 북동쪽으로 산과 경부선을 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진 ‘풍세들’은 소정리와 광덕에서 나온 두 줄기 강(우리는 ‘냇갈’로 부름)이 만나 온양 현충사 쪽으로 흘러나갑니다. 지금은 두 강 사이, 그러니까 ‘풍세들’ 한 가운데로 경부고속철이 고가로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풍세들 너머로, 그러니까 서쪽으로는 옛적 충무공이 백의종군하러 온양을 거쳐 유구로 내려가던 산 - 태화산과 광덕산이 의젓하게 자리 잡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동네 앞 ‘냇갈’은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지만 실은 폭이 백 미터도 넘는 강입니다.
홍수가 져 노도 같은 흙탕물- 가끔 돼지도 떠내려 오는- 이 무섭게 흐를 때를 빼곤 늘 맑은 물이 흐르고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곱고 너른 백사장은 우리들의 놀이터이었습니다. 소꼴을 먹이며 씨름도 하고 물새알도 찾아 구어 먹고 철에 따라 서리도 했습니다. 백사장은 얼마나 넓었던지 축구를 했었으니까요.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냇갈’과 백사장은 가장 선연하게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새마을 운동 노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70년 대 초, 외지에 있다 방학 때 온 어느 해 일입니다. ‘냇갈’로 통하는 동네 앞길은 대형 트럭들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근동에서 개가 많기로 소문난 동네라 개 짖는 소리는 얼마나 요란했던지.....새벽에도 쉬지 않고 운행하는 굉음에 동네 분들은 분연히 일어나 집단대응을 했답니다. 그분들은 그저 진입로를 깊이 파고 면사무소로 몰려갔습니다.
답은 ‘5공화국’ 다웠습니다.
파인 길은 곧바로 메워졌고 깍두기 머리 한 무리가 동네 한 바퀴 무력시위를 하여 별 일도 없이 평정해버렸습니다. 면사무소는 군에서 적법하게 허가를 내줘서 어쩔 수 없다고 했고요.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백사장이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졌습니다. 허가된 양보다 훨씬 많은 모래를 파내갔다는 후문인데 당시에는 문제될 수도 없었지요. 동네 사람들은 생소한 단어 ‘루베’를 배웠습니다.

< 모래사장은 온데간데 없고, 물은 더러워졌다. >

그런데 당장 다음 해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쇠스랑으로 긁으면 실한 모래무지가 나오던 바닥은 모래 대신 자갈이 드러났습니다. 역국대 찧어 메기, 뱀장어 잡던 방채 밑은 적은 비에도 쓸려 패어나가자 돌멩이를 넣은 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더욱이 하상이 낮아져 주변 전답에 물을 댈 수 없었습니다.

결국 보를 막았습니다. 강폭 전체에 좁은 어도만 남기고 시멘트로 보를 만들었습니다. 한 2km 사이에 2개의 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 밑으로는 계속 바닥이 쓸려나갔고 보 위로는 모래가 쌓였습니다.
하지만 바닥은 곱고 하얀 모래 대신에 뻘 같은 흙이 덮이고 갈색 앙금이 두껍게 가라앉았습니다. 고인 물에는 장구벌레랑 빨간 실지렁이들이 득시글했습니다. 없어진 백사장에는 수초만 우거져 찾는 새들도 달라졌습니다.

달빛 아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목욕하던 아낙네들도 없습니다.
백사장에서 놀던 아이들도 없어졌습니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발바닥을 간지럽히던 고운 모래도 없습니다.

더 이상 맑은 소리 내며 흐르던 냇물은 없고 탁한 거울처럼 무거운 물만 하늘을 튕기고 있습니다.
줄지어 유영하던 ‘불거지’는 없고 등이 시커먼 붕어 떼가 보입니다.
낄룩이라 부르던 물새도 떠났습니다.

살아 꿈틀대며 비늘 번쩍이던 ‘냇갈’은 간 데 없습니다.
어렸을 적 ‘냇갈’은 아침부터 밤까지 동네 남녀노소 누구나 아니 개, 소까지도 어울려 살던 마당이었습니다.
이제 동네 누구도 ‘냇갈’에서 하루 종일 놀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 새벽과 저녁 무렵에 물안개가 훨씬 많이 피어오릅니다. 부끄러운 제 몸뚱이를 감추려는 것은 아닐 것이고 아마 수온이 올라가서겠지요. 제게는 애틋한 추억이라도 있지만 서른이 안 된 고향사람들에겐 그저 수초가 무성하고 흐린 물이 고여 있는 ‘냇갈’만 있을 겁니다.

4대강 살리기니 죽이기니 논란이 큽니다.
MB정부는 정권을 걸고 4대강 공사를 강행합니다. 마치 “이 무지렁이들아, 완공하고 나면 고마워하고 칭송할 것이다. 청계천을 보아라!”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일자리 창출이니, 경제효과니, 낙후 지역발전이니, 홍수와 가뭄 예방이니, 용수확보니 관광산업 발전이니 하는 숨찬 홍보는 의구심이 들지만 시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계속 하고 싶다면 영산강처럼 규모가 작고 타당성이 있는 곳부터 시행하여 보고 문제점이 생기면 보완해서 다른 곳을 하면 어떨지요? 하나님 창조질서를 흩뜨리고 전 국토를 한 번에 뒤집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 뒷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을 기억하고 다룰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옛날엔 몰라서 고향의 ‘냇갈’을 그림처럼 만들었습니다. 가슴이 아픈 추억만으로 남았습니다만 ‘냇갈’은 유년의 강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내 자식들은 제가 꿈을 키우던 고향의 강을 아예 모릅니다. 고운 모래, 비늘 반짝이는 고향의 강은 꿈에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단식을 합니다.
4대강을 고향의 ‘냇갈’처럼 만들지 말라고 애원의 단식을 합니다. 고향의 강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4대강 공사를 중지하라는 희망의 단식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포보 사람들이나 청와대 사람들이나 모두와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의 단식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