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결이야기

기다림의 미덕을 가르쳐 준 김결

빨간 미니스커트, 기다림, 김결 이야기


< 문수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제에 참여한 후 식당에서 >

김결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하지만 생일이 12월 28일이니까 어린 6학년이죠.

헉, 빨간 미니스커트!
결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와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제 속에 저와 많이 닮은 큰 얘를 편애하는 마음이 있었고, (말은 안해도) 결이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이는 아빠를 어려워하고, 아빠와 얘기할 때도 긴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결이가 6살 때 제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빨간 초(?) 미니스커트를 입은 결이가 "아빠"하고 달려왔습니다.
저는 눈에 거슬려 "안 예쁘다. 벗어라"하고 제 방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결이가 너무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에서 씼고 나오는 저에게 어머님이 "(어디서 얻은 옷인데) 결이가 아기스포츠단 갔다 오자마자 입고 나간다고 해서 너무 짧으니까 집에서만 입기로 했는데 너는 아이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냐?"며 말씀하셨습니다. 

한쪽에서 계속 울고있는 결이를 보며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빠는 아빠고, 아이는 아이인데, 아이가 내 맘에 안든다고, 아이가 내 틀에 안 맞는다고, 아빠는 수더분한 것을 좋아하는데 아이가 튄다고 마음에 안들어 하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아이의 특성을 특성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이도 그것을 느꼈는지 한 1년 지난 다음부터 관계가 많이 편해지고, 아빠도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둘, 그런데 전혀 달라!!
아이가 둘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큰 얘는 언어와 수를 아주 일찍 스스로 깨쳤습니다. 그런데 결이는 말하기가 아주 늦더니 2학년까지 쓰기를 못했습니다. 
부모 마음은 조급하지만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아이 말을 많이 들어주고, 시간이 되면 동화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가족과 친구의 기념일에는 편지대신 그림카드를 보내고, 시간만 되면 그림을 그립니다. 

부모 마음이 다 똑같아 속앓이도 했지만 5학년 때부터 동화책 읽기에 재미가 붙더니 지난 겨울방학 때는 (어렸을 때 책에 붙어살던 큰 얘는 심드렁한데) 매주 도서관에서 3~4권의 책을 빌려서 읽습니다. 

6학년이 되더니 어휘력도 많이 늘어 오빠와 말싸움에도 밀리지 않아 오빠 눈이 휘둥그레지곤 합니다. 

기다림의 미학, 제 때의 이치
결이를 보면서 조금 앞선다고, 조금 뒤진다고 일희일비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새삼 느낍니다. 
아직은 수학을 힘들어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풀지못하기 보다는 지레 질려서 안 풀거나 못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배움은 스스로의 힘을 길러가는 것인데 어른들은 그것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에 연연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참된 배움의 기회를 가로막고, 지연시킵니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더욱 기다림의 미덕을, 기다림의 참 의미를 알게해 준 결이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 애니어그램 수련 끝나고 결이가 책상 앞에 붙여놓은 글 - 글도 그림같고 결이가 쓴 글에는 항상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생깁니다. (애니어그램을 아시는 분은 아빠와의 관계가 어려웠는데 왜 6번일까 생각하실텐데 저보다는 할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P.S. 결이는 친할머니를 많이 닮았습니다. 여고 졸업하자마자 3대 독자였던 오빠의 손을 잡고 월남했던 어머님은 손재주가 좋으셨는데 "전쟁만 없었으면 미대에 갔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신비로운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결이가 "할머니 돌아가셨어요?"해서 왜 그러냐니까 "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니 정말 그날 오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영적 관계맺음은 우리가 경험하는 시공간을 넘어 우주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나 봅니다.

'산결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학년 울 딸, 알고보니 예술가  (4) 2010.06.11
선물도 엣지있게  (3) 2010.05.07
고맙다. 회초리  (1) 2010.04.19
14살 울 아들, 인생 좌우명  (7) 2010.04.09
달걀 예수  (7) 201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