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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홍콩 통신(2)

아시아의 현실(Realities)과 신학

 Needhi(yum)~ Samadhanam~ Oundeam ( 2번)~ Mutheem Sayum
 Justice, Peace, Each other, Kiss라는 뜻의 평화를 바라는 타밀노래입니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해서 반복하면서 점점 강하게 부르는 노래입니다.(한번 영어 발음대로 따라해 보세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예배는 돌아가면서 준비하는데 영어로 준비하지만 간단한 찬송이나 노래, 인사는 자기 나라말로 진행자가 가르쳐줍니다. 이곳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라 신학과 아시아의 현실을 가르치는 데이빋 박사는 성경봉독을 영어로 읽은 다음 꼭 각국의 언어로 다시 읽도록 합니다. 그러면 말은 통하지 않지만 각 국의 언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것을 읽는 사람의 목소리가 영어로 말할 때보다 얼마나 자유롭고, 강렬한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신학과 아시아의 현실을 가르치는 데이빋 박사(Dr David Selvaraj)는 인도 분입니다. (위의 사진은 교육 참가자가 모두 함께 찍었는데, 제 왼쪽이 아시아연맹에서 일하는 크리스티나, 제 오른쪽이 데이빋 박사입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아시아 민중에 대한 뜨거운 애정, 그러나 참가자 하나하나를 존중하며 신학과 아시아의 현실로 함께 여행하자는 데이빋 박사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속에는 신문을 들고”세상 속에서 대안적인 사회(Alternative Society), 대안적인 관계(Alternative Relationship)의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루자고 합니다. 그는 인간다움과 자유로움을 본질로 하는 신학이 그 동안 통제의 도구로 얼마나 악용되었는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편견과 광기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며 약자, 파괴되는 자연과 함께 고통 받으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 고발합니다.

 최고부자 20%가 세계소득의 82.7%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최빈자 20%는 소득의 1.4%를 차지하고 있는 비대칭의 현실, 인도의 비인간적 카스트 제도와 1960년부터 시작된 미얀마의 군부독재, 스리랑카의 내전, 아직도 수많은 인권운동가가 살해되고 있는 필리핀의 현실이 그와 참가자들의 고백에 의해 생생히 드러납니다. 이런 아시아의 현실 앞에서 그는 사회적 장벽을 깨고, 약자를 억압했던 사회 질서에 도전했던 예수의 삶과 성경을 돌아보며 YMCA와 교회가 그 길을 따라 대안적 사회와 대안적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냐고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리고 우리사회와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사회를 통합(Inclusion)시키기보다는 배제(Exclusion)시키고 있는지 그래서 예수의 삶을 따르는 YMCA가 우리사회의 배제된 사람들(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농부 등)에게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의 편에 서야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데이빋 박사는 사회적 실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시각이 요구되지만 대안적 사회를 위해서는 시인의 마음이 요구된다며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가족,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넓히는 것,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당신의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함석헌 선생을 연상시키는 데이빋 박사와 지낸 1주일은 저에게 수많은 도전을 던져줬습니다. 그와 함께 한 여행 속에서 한국사회 속에만 빠져있던 저의 시각이 아시아적 범위로 넓혀진 반면 고통 받는 아시아의 현실을 생생하게 만나게 됩니다. 처음 논의를 시작할 때는 필리핀, 미얀마, 스리랑카 등 어려운 나라에서 온 간사들에 비해 홍콩, 대만 등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에서 온 간사들은 자신들은 안정되어 있고,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만과 중국의 긴장관계, 지금은 한 국가 2체제로 지내지만 50년 후에는 중국에 완전히 귀속되는 홍콩의 불안한 미래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동시대를 사는 아시아인으로 서로가 알게 모르게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선생 없는 교실도 많고, 100명 중 66명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4명이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오직 18명만이 칼리지를 졸업한다는 필리핀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턱 막히게 됩니다. (필리핀은 우리와는 학제가 달라서 초등학교 6년, 하이스쿨 4년, 칼리지 2~4년으로 되어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이렇게 심각하게만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일요일 저녁에는 요리를 잘하는 간사가 주동을 해서 그 나라 요리를 함께 해 먹기도 하고, 일주일에 2번 정도 저녁에 함께 술 마시며 노는 시간은 정말 즐겁습니다. 기타를 잘 치는 필리핀의 모리토가 노래를 주도하고, 서로 떠들고 웃고 즐기다 보면 친밀감과 강한 연대감이 형성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술자리 보다 더 즐거운 것이 오히려 외국이라 서로에게 더욱 쉽게 마음을 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예기치 못한 놀라움과 즐거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인도에서 온 존은 음식 문제로 무척 고생을 합니다. 저는 신토불이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 이곳에서는 홍콩 음식만 먹는데(물론 저도 아침에 주는 튀긴 국수는 도저히 못 먹습니다.) 존은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식탁에 우울하게 앉아있던 존이 갑자기 밥에 설탕을 듬뿍 쳐서 먹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가 빨래를 널고 있는데 가나에서 온 코비가 아침 7시 30분에 무척 바쁘게 어딘가를 가서 “너 왜 그렇게 일찍 가냐”(아침식사는 8시, 수업은 8시 30분에 시작됩니다)하니까 놀라서 시계를 보더니 자기는 8시 30분인 줄 알았는데 아무도 자기를 깨우지 않아서 아침도 못 먹고 교실로 갈 뻔했다며 어이없어 해서 모두가 웃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제가 창을 열어놓고 교실에 있는데 필리핀과 인도에서 온 간사들이 “뱀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면서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합니다. 제가 “벽이 있는데 뱀이 어떻게 들어 오냐?” 하니까 너는 몰라서 그런다며 필리핀에서 온 모리토가 코브라가 집에 들어왔던 경험을 장황하게 이야기합니다.

 인구 7백만이 사는 홍콩은 서양문화와 동양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글로벌한 도시입니다. 도시 중심에 나가보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고(역사박물관에는 1847년 홍콩 인구가 23,872명이었는데 그 중에 유럽인이 603명, 포르트갈 인이 264명, 인도 . 말레시아.  기타가 539명이었는데 이 소수가 홍콩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써있습니다.) 한쪽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밀집해있는 극도로 호화로운 빌딩이 자리하고 있는 반면 거리마다 걸인도 많고, 일요일에는 도심 곳곳을 필리핀 가정부들이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2층 전철인 트램은 세련된 광고판으로 가득 덮여있고, TV에도 드라마 중간 중간 광고가 넘쳐납니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상징인 홍콩은 1840년 아편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 점령당했지만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어 ‘중국 홍콩’이라는 명칭 하에 현재는 50년 동안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더 혼잡한 도시, 이곳 홍콩에서 아시아의 현실과 대안적 사회를 좀 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여러분을 만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