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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지역의 눈으로 한국사회 길찾기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하승수, 후마니타스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분주하다. 선거법 개정으로 예비후보 기간이 늘어난 난탓에 후보들은 밤낮없이 지역을 돌아다니지만 시민들은 냉담하고, 선거공간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반면 후보들만큼 바쁜 사람들은 이해당사자들이다. 선거를 코앞에 둔 부천시의회에서 새마을운동지원조례가 통과되었나 하면 참전용사지원조례가 임시회에서 논의 중이다.
 
지방선거 투표율은 2002년 48.9%, 2006년 51.6%. 유권자의 절반만이 투표에 참여하고 통상 득표율 40% 중.후반에서 당선되니 유권자 10명 중 2명이 선택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시민생활을 총체적으로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의미와 가능성을 새롭게 탐색해보자.
이 책의 저자인 하승수 변호사는 우리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중앙의 시민운동보다는 풀뿌리 지역현장에서 오랜 기간 묵묵히 실천과 연구를 병행해온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지역의 이중성, 고착화된 but 희망의 싹
그는 “지역에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것, 그것에 기반을 두고 관료주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정책 과정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핵심과제"라고 주장한다. 결국 한국사회의 미래가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지역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가 본 지역은 “시민의 무관심과 낮은 참여, 특정 정당이 장기 지배하고 있는 대의정치, 독주하는 지방자치단체장, 견제.감시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지방의회, 이익 배분 또는 기득권 보장과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뿌리 깊은 후견주의, 중앙관료 조직에 의한 획일적인 통제, 그리고 지역사회의 저변에 존재하는 기득권을 가진 사회단체들....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고 고착되고 있다.”        (본문 중에서)

그는 줄곧 이 이중성과 씨름한다. “자치의 꿈과 풀뿌리 기득권 구조의 강화”(1장) “지방자치의 딜레마와 쟁점”(2장) “왜곡되는 직접민주주의와 주민 참여 가능성”(4장), 풀뿌리 민주주의에 열광했지만 결국 풀뿌리 보수주의로 귀착되고 있는 지역의 절망적 현실, 중앙보다 더 지체되어 있는 지역의 모순과 문제를 그는 하나하나 냉정하게 해부한다.

“2005년 6월 『한겨레』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세 지역의 기초의회 홈페이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인 명부’에 나타난 이 지역 기초의원들의 출신경력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 전체 1,126명 가운데 37.5%인 422명이 3대 관변단체(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운동, 자유총연맹)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본문 중에서)

그래서 그는 “한국의 지역사회는 누가 지배하는가?”(3장)라며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뿐만 아니라 토호, 관변단체, 중앙정당과 중앙 정치인의 영향력, 지방 언론, 지식인(전문가) 집단, 시민.사회운동, 경제인 등 지역사회 각 주체들의 상호관계를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내발적 발전 또는 대항발전
노무현 정부 시기 지방균형발전을 상당히 추진했으나 그에 비례해서 지역의 자치성, 자립성이 증진된 것은 아니다. 왜일까?
하승수 변호사는 이렇게 분석한다. “우리사회에서 지역간 불균형이 생기는 원인은 ‘중앙집중화’와 ‘도시화’이고, 이 두 가지 큰 흐름으로 한국사회에서의 불균형은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균형발전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역 성장 정책’이고 지방에서도 발전 지역 또는 가능성이 큰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거점중심의 개발 전략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본질적으로 불균형 성장 정책이다.”     (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그는 2005년 11월 2일 전국 4개 지방자치단체(군산시, 포항시, 경주시, 영덕군)에서 동시에 실시된 방폐장 유치와 관련된 주민투표를 최소한의 민주주의 원칙조차 무시된 사례로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에 대비해 울진과 영광, 삼척이 방폐장 유치신청을 하지 않은 점을 부각시킨다. 특히 전남 영광군의 김봉열 군수는 “원자력 발전소 6개가 영광군에 건설 가동된 이후에 20여년 동안 영광군에 3,000억원 정도가 지원되었지만, 주로 공공시설 사업에 투자된 이러한 자금이 군민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본문 중에서)

그래서 이제는 외래형 발전의 환상에서 벗어나 ‘내발적 발전’ 즉,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에 있는 자원, 기술, 인재, 문화, 시장 등 자원을 활용하여 복합적인 경제를 육성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같은 맥락으로‘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에서 더글러스 러미스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경제활동 이외의 인간활동과 시장 이외의 행동, 문화, 즐거움을 발전시키는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6.2 지방선거, 지방자치가 조금은 전진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보수주의로 전락한 지방자치를 쇄신하려면 발상의 전환, 시민참여, 지역의 재구성이 필연적이다. 시민적 대안은 큰 것이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활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실천과 대안적 실험을 통해 활기찬 삶의 거점이 형성될 때, 비로소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방파제로 작동하고, 개발로 황폐화된 한국사회에 새로운 상상력의 씨앗으로 발아할 수 있을 것이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희망보다는 절망이, 신뢰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를 조금씩 전진시켜왔던 민초들의 거대한 힘에 대한 믿음으로, 지방자치의 목적과 원칙을 돌아보게 하는 이 책을 읽으며 6월 2일을 준비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