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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삶의 노래

 노래와 삶은 하나인 것을

당신은 힘들고, 어려울 때 무엇을 합니까? 저는 주로 산에 갑니다. 땀투성이 지친 몸을 이끌고 험한 산의 정상에 섰을 때, 넓게 펼쳐진 산자락과 하늘을 보면 저는 제 삶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노래....지치고 힘들 때 읊조리듯이 부르는 노래, 신나게 함께 부르며 너와 내가 하나 됨을 느끼는 노래.

Oscurece en el Lago
Oscurece en el Lago by P. Medin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노래에 얽힌 풍경 1

혹시 당신은 인생을 상징하는, 강렬한 과거로 회귀하는, 그 순간이 아직도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노래 한곡이 있나요? 저에게는 그런 노래가 있습니다. 

“88년 늦가을, 아마도 부평공단이었던 것 같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자마자 탄압을 당해 파업을 하고 있던 공장에서 노동조합 사무장이 실수로 2층에서 떨어져 생명을 잃었다. 그 여성이 대학생이었다는 사실 외에 필자는 그 여성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동료들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날 처음 본 꽃다운 나이의 영정 사진, 왜곡된 역사와 부정의한 사회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 속에 자신을 던진 여성, 그 이면에 놓여있는 슬픔과 기쁨, 아픔과 열망으로 얼룩진 삶의 순간들...

그날은 비가 내렸다. 그녀가 일하던 공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숙연하고, 슬프게 그녀의 주검을 떠나보낼 때 하늘에서는 가을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 내 친구는 굵은 눈물 붉은 피 흘리며 역사가 부른다.

멀고 험한 길을 북소리 울리며 사라져 간다......(친구 2)”

노래에 얽힌 풍경 2

YMCA에서 공장과자 안먹기 운동을 하면서 다같이 부른 노래가 ‘밥상’입니다. “쌀밥 보리밥 조밥 콩밥 팥밥 오곡밥...” 처음엔 5~7세 어린이들이 이렇게 힘든 가사를 외울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정작 어린이들은 너무 좋아했고, 또 어린이들이 집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은 학부모들이 놀랍고, 반가워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주 좋아하시면서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작은 교회에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성가대도 없고, 주일예배 찬송을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3년쯤 전에 저희 가족이 ‘꼴찌를 위하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배에 청소년 쉼터에 있는 청소년 5명이 참여했습니다. 다소곳한 저희 아이들의 눈에는  머리가 울긋불긋하고, 불량스러워 보이는 청소년들이 무섭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이 노래를 부르는데 한두명이 눈물을 흘리고, 다른 청소년들도 굉장히 집중해서 듣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청소년들과 같이 온 전도사님이 악보를 달라고 하더군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저희 아이들도 그 청소년들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꼴찌를 위하여는 이렇게 끝나죠.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을거야”

노래가 사라진 시대, 다시 살아나는 노래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래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노래가 사라진 공간을 상업적인 노래, 사랑타령, 국적불명의 노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르는 노래는 사라지고 듣는 노래만 넘쳐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노래만 흉내 냅니다.

이런 현상은 삶의 주체성이 약화되고, 구경꾼 ․ 소비자로 전락한 이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는 삶입니다. 예쁜 노래, 교훈적인 노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 그대로 슬픈 노래, 아픈 노래, 해학적인 노래, 결단하는 노래, 웃는 노래, 위로하는 노래, 서로를 묶어주는 노래, 비오는 노래, 눈오는 노래, 봄 햇살의 노래, 낙엽지는 노래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노래를 가진 어린이, 자신의 노래를 가진 어른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울리고 동화되고, 공명하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