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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당신은 야만인인가? 야성인인가?

무쇠 한스 이야기 - 남자의 책  
로버트 블라이 지음,  씨앗을 뿌리는 사람

“그대 걷는 자여, 길은 없다.
바람만이 흔적을 남기는 바다.“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

남자는, 일의 세계에서 아찔한 속도 경쟁의 어지러움증에 허덕인다. 그가 돌아온 가정에서, 남자는 겉돈다. 남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무쇠 한스 이야기’는 삶의 자리를 잃은, 영혼과 마음이 상실된 남자를 위한 책이다. “전미 비평가가 뽑은 인생 필독서”“뉴욕타임즈 최장기 베스트셀러”라는 유명세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픈 그런 책이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여성 해방운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남성은? 남성의 정체성에 대하여 돌아보는 남성은.......
거의 없다.

남성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남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상(像)은 두가지 이다. 하나는 근육질에 과묵하고, 지배하는 남성, 또 하나는 부드럽고 상냥한 남성.
하지만 저자는 이 두가지 남성상(像) 모두를 깨부순다.

첫째, 귄위주의적인 남성상은 50년대 남성인데 그들은 가족을 지배하고, 군림했다. 하지만 그들은 (허세의 밑바닥에 있는) 고립감, 상실감으로 괴로워했다.
둘째, 그후 20여년 동안 여성들의 욕구와 사회적인 이유가 만나 ‘부드러운 남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부드러운 남자’는 탈귄위적이고, 환경문제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전 세대에 비해 더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또 생명력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남자 옆에는 생명력이 강한 여성이 턱 버티고 서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수많은 전통사회에서, 소년이 남자로 변할 때 그들은 엄격한 통과의례를 치룬다.  
“남서부의 아프리카 원주민 사이에서는 소년이 열두 살이 되면 ‘키바’라고 하는 남자들만 있는 곳으로 나이든 어른이 소년을 데리고 내려간다. 소년은 6주간 거기 머물고 1년 반 동안 어머니를 보지 못한다.”(본문 중에서)
어머니와의 분리 - 그를 통해 소년은 남자로 된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분리되지 못하는 남자는....그는 언제나 소년일 뿐이다.

“남자들의 친목회와 사교 모임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피닉스 같은 노인들 휴양지에 가있고 아이들은 옛 어른들 관점에서 보면 머릿속에 든게 아무것도 없는 동년배하고만 어울린다....여자는 태아를 소년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소년을 남자로 만드는 일은 남자만이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소년을 남자로 만드는 남자는 누구인가? 아버지와 삼촌, 이웃 아저씨 등 나이든 남자들이다. 그런데 이제 소년들 옆에서 나이든 남자들이 사라졌다.
과거 소년들은 농사, 목수, 대장장이, 도예공 등 아버지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하지만 산업혁명 후 소년들에게서 아버지가 사라졌다. 직장 일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집안 일에 무능하고, 짜증만 내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수천년 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와 신화에 기대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적이라고 추앙되는 우리의 합리적 사고는 겨우 150여년을 이어온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텍스트는 오래된 동화 ‘무쇠 한스의 이야기’이다.

무쇠 한스 이야기에서 남자가 되는 과정은 5단계의 통과의례로 이루어진다.
“첫째 어머니와의 유착 및 결별, 둘째 아버지와의 유착 및 결별, 셋째 어머니로서의 남자 즉 스승의 출현, 넷째 야성인, 전사, 디오니소스, 아폴로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 속에서 받는 훈련, 다섯째 신성한 여인과의 혼례”(본문 중에서)

이 5단계를 거치며 남자는 자기본질, 즉 야성인이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자가 야만인과 야성인을 철저히 구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성인이 풍기는 거칠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상은 남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무지막지한 사내의 기운과는 다르다. 야성인의 기운은 그와는 달리 잔인하다기보다는 단호하게, 강력한 행동으로 이끈다.”(본문 중에서)

저자가 그리는 야성인은 들판에 살면서 예수에게 세례를 줬던 세례 요한, 월든 호숫가에서 자립적인 삶을 살면서 노예제도에 반대해 세금 납부를 거절했던 소로우와 같은 사람이다.

우리사회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보완적인 존재일 뿐이다. 심지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기러기 아빠가 넘쳐난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소년들이 진정한 남자가 될 수 있을까?

“수많은 전통사회에서는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아이를 보살핀다. 노인의 보살핌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노래, 곧 여성적 보살핌의 바탕 위에서 시작되었다. 나중에 소년은 대지를 밟는다. 그것은 사냥, 추위, 바람, 폭풍우의 시간이다. 어머니의 보살핌, 대지와의 결합이라는 바탕이 갖춰져야 비로소 나이든 어른이 찾아와 남자의 보살핌, 남자의 세계를 맛본다.”(본문 중에서)

남자의 보살핌이 사라진 사회에서 소년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청소년들은 거리를 헤메고, 사회는 그들을 학교와 학원에 감금하고, 오직 목표는 그들이 말썽만 부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소년들의 삶에 남자들이 개입해야 한다. 그래서 “상처와 성숙에 얽힌 남성의 수수께끼를 밝히는 길”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